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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했어.
저것을 사야겠어.
가격은 좀 센 편인데… 상관없어.
사고말거야.
사고말거야.
사고말거야.
반드시.



바야흐로‘지름’의 시대,
경제가 불황이든 호황이든
주가가 폭등하든 급락하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현금으로, 외상으로, 신용카드로 지르고 또 질러댄다.

먹고 살기 위해를 위시하여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을진데
그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굳이 학창시절 배운
의식주의 해결이나 보다 높은 차원의 욕구의 해소,
자아실현 등의 단계별 목적을 짚어볼 것도 없이
구매 행위는 궁극적으로‘행복추구’를 위함에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돈을 쓰면 행복진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차를 사고 옷을 사고 책을 사고 화장품을 사고 취미생활을 위한 투자를 하고,
그럼으로써 어떠한 물건 하나가 차고에, 방에, 핸드백에, 거실에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치 자신이 크게 업그레이드라도 된 듯 흐믓함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더 나은(혹은 더 나아 보이는) 자신을 보고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문제는 구매를 통한 행복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지고 잊혀진다.

2년전 미국출장 갔을 때 그동안 잘 써오던 디지털카메라가 박살이 났다.
액정이 반으로 쪼개진 것이다. 수리비를 알아보니 중고로 다시 사는 것과 큰 차이 없었다.
냉큼 포기해버렸다.  

디카없이 잘 살거라 믿었다. 없이 살아도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디카없다고 굶어죽거나 손가락질 받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곧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신경쓰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더해졌다.

조금 아쉽네, 심심하네 정도의 생각이 어느새 디카가 반드시 있어야 되겠네라는
강박감으로 바뀌어 갔으며 단지 디카가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자꾸 부족하고 모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과장해서 스스로가 '완성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난 '디카가 없기 때문에' 95점의 내가 되고 85점이 되고 75점이 되어갔다.
디카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고 내 주된 관심사은 철저히 이 녀석으로 한정되어졌다.  

결국 몇 달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디카를 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것또한 쉽지 않았던 것이
디시인사이드나 인터넷 쇼핑몰 등을 수백번 들락날락거리며
수십가지의 대상후보들에 대해 장고(長考)를 거듭해가며
고민해야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결정을 지은 후 택배를 받았을 때의 희열은 대단했다.
박스를 뜯을 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기분 좋음이 몸 속에 넘쳐흘렀다.  

이후 한동안 새디카는 내 삶의 핵심으로 뚜렷하게 자리잡았다.
외출시마다 항상 핸드폰, 지갑과 더불어 필수품목으로 지참하였고
집에 있을 땐 혼자서 셀프찍고 접사찍고 갖은 쇼를 하다가
인터넷 게시판을 뒤지면서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팁 등을 모색했다.
카메라를 담을 파우치와 스트랩, 삼각대 구입에 추가로 돈이 더 들어갔고
홈페이지의 사진란은 수시로 업데이트되었다.

그러나 이런 날들이 며칠을 갔을 것 같은가.
우습게도 내가 어떤 디카를 살까 고민한만큼의 시간도 채 넘기지 못했다.

가방이 무겁다, 충전이 덜 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같이 외출하는 횟수는 현저히 줄었고
예전처럼 집에서 카메라를 괜히 쳐다보고,
만지작 거리며 싱글거리는 회수는 가뿐히 제로에 수렴하였다.
아침점심저녁 하루에 세 번 이상 들락거리던 관련게시판은 발 끊은지 오래
나름 열심히 읽어보던 카메라 관련 서적은 라면받침으로도 쓰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처음 샀을 때는 지문만 묻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기스 하나 생기면 하루 종일 우울했었는데
지금은 기스나고 벗겨진 곳, 나사 빠진 곳 등 문제생긴 곳이 10군데는 넘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애달픔이 없다. 그냥 그러러니 하는 것이다.

자. 이쯤되면 내가 큰 돈 주고 얻은 그 만족감은 깡그리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사진을 통해 주는 소소한 행복이나 여행시의 유용성은 물론 지금도 종종 느끼고 있지만
순수히 구매 행위로 인한 감정의 흥분신장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디카가 없어서 너무도 허전하게 느껴졌던 그 빈자리가 비로소 메워진 후에는
디카가 있음으로 인해 나 자신이 더 좋아지고 향상된게 아니라
상처가 아물듯 디카가 있는 내가 당연시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나는 내가 살 집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듯 디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내가 살 집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매일 감사해하고 두근거려하거나 설레여하지 아니하듯
디카로 인해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카메라뿐만이 아니다. 핸드폰도 그러했고, 자전거도 그러했고, MP3도 그러했고
내 방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그러했다.
분명 그것들은 여전히 내 소유로 남아 있지만
처음 샀을 때의 만족감은 사라지고 없다.
이미 내 것이니까.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니까.
더 이상 새롭지 않으니까 말이다.


                        - 구매를 통한 행복감지수의 예제 -

올 7월에도 나는 참 많이도 질러댔다.
먹고 살기 위해, 패션을 위해, 건강을 위해, 취미생활을 위해 등등의
이유를 앞세우며 이런 구매들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을,
더 발전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실제적인 나는 여전히 영점에 있다.
구매로 인해 짧으면 하루, 길면 한달 정도 지속될 행복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종내 이런 기분은 사그라질 것이며
다음달의 나는, 내년의 나는 또 다시 내 자신이 마치 큰 문제라도 있는 듯
심각하게 고심해가며 또 다른 구매를 준비하고 추진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내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한다면,
오래 지속되고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행복감은
결코 돈을 쓰는 행위에서 비롯되지 않음을 깊이 확신한다면,
나를 둘러싼 물건들로 인함이 아닌,
실제적인 내 스스로를 영속적으로 발전시켜줄 수 있는 견고한 가치들에 정진한다면
지금 써대는 돈의 절반만 소비해도 난 두배로 행복해하지 않을까.

어떻게보면 내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재테크는 이런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자아.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마음가짐을 다져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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