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시작한 것이 7월이 되어서야 끝나내요.
꽤나 만족스러웠던 시작에 비해
뒷이야기들이 잘 받쳐주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더 많이 읽고 배워서 좀더 나은 스토리로 다시 도전해보겠습니다.
=========================================
[2006년 12월 25일]
간밤엔 잠을 전혀 이루지 못하였다.
눈을 감으면 환하게 웃는 그녀모습이 어른거리고
수술과 병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그 위에 겹쳐져 눈앞에서 밤새도록 춤을 춰댔다.
즐겁고도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손을 펴보니
어젯밤 그녀의 감촉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느낌이다.
주먹을 꽉 쥐며 되내여본다.
이 느낌 놓치기 싫어.
절대로.
수술은 아침 10시 경.
아침식사를 먹는둥마는둥하고 8시 정도에 병원에 갔는데,
그녀는 이미 와서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다가
날 보더니 귀엽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댔다.
그 미소에 괜히 가슴이 두근했다.
오늘은 왠지 감이 좋다고 웃으면서 격려해 주었고
그녀 역시 해맑은 미소로 화답하였지만
그 위에 가득 실린 불안을 차마 감추지는 못하였다.
많이 힘들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받는게 좋을 것 같아 그녀에게 먼저 양보를 했는데,
차라리 내가 먼저 수술을 받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되어
할아버지 의사와 아들 의사가 모두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는 대기실에서 TV를 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수술장면을 보고 싶었으나 의사들이 말렸다.
나 역시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이니까. 그편이 옳다.
병원은 대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다.
대기실에는 손님이 한 세 명 정도 앉아있고
간호사 한두명이 들락날락할 뿐이다.
시간은 빨리 흘러 금세 12시경이 되었는데
보통 이런 수술의 얼마나 걸리는지, 얼마나 걸려야 정상인지조차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잘 되고 있긴 한 걸까.
화장실에나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순간, 갑자기
왼쪽 심장 부근이 콱 조여왔다. 아찔한 아픔이 터져온다.
숨이 확 막혀와서 내쉴 수도 들이쉴 수도 없다.
눈 앞이 일순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폭풍이라도 치는듯 커다란 소음이 들려온다.
다리를 제대로 지탱할 수 없어 테이블에 몸을 기대니
고통이 심장쪽에서 온 몸 구석구석으로 삽시간에 퍼지고
전신의 신경이 찢어지는 듯 격렬히 반응해왔다.
난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뺨을 땅바닥에 부빌듯한 자세로 쓰러져버린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귀속에서 파열하는 소음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다.
심장쪽에서부터라면 역시 그 녀석,
그 재수없게 생긴 시커먼 녀석으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땅바닥에서 헐떡이며 생각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턱밑을 조르며 압박해오는 고통에 숨을 더 가누지 못하고
그만 의식의 끈을 놓아버린다.
아주 잠깐, 그녀의 우는 얼굴이 눈 앞에 떠오르다 사라진다.
[XXXX년 X월 X일]
눈을 뜬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어딜까.
나는 지금...
그래. 누워있다. 병원침대인듯하다.
왼쪽 가슴이 피부의 낫지않은 상처자국처럼 몹시 아리고 쏘는듯한 느낌인데
그래도 한결 낫다. 여전히 전신이 찌릿찌릿하지만 제법 견딜만 하고
귀안에서 울부짖던 소음도 상당히 작아졌다.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팔 다리, 목을 움직여보니 수월치는 않지만 다행히 조금씩은 움직여진다.
겨우 몸을 일으켜세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평소처럼 한 15분 정도 있으면 시력이 돌아와주려나?
아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평소와는 완연히 다른 몸이 되어있다.
나는 기어이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 같다.
"아. 아. 아"
목소리가 나온다. 말은 할 수 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후다닥 달려와 내 손을 벌컥 잡는다.
"괜찮냐?! 정신이 좀 들어?!"
이 목소리는.. 할아버지다.
"아 오셨어요?.. 여기는 어떻게.."
"연락받고 왔지 녀석아. 며칠 동안 깨어나지도 못하고..
상태가 말이 아니구나 말이.."
"아.. 이젠..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때마침 문이 열리며 사람들 여럿이 급히 들어온다.
그녀의 향기가 난다. 알 수 있다.
보고싶은데 눈이 보이지가 않아. 보고싶은데.
의사들이 동태를 묻고는 이런저런 수치 등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들어보니 한 3일은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한다.
"좀 괜찮아요? 정말.. 어떡해요..."
울먹이는 목소리. 그녀다.
"아아. 걱정하지 말아요. 금방 일어날테니까"
빛을 잃은 후 가장 늘은 것, 거짓말이다.
"그보다.. 수술은 어땠나요?.. 성공했나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녀와 의사가 동시에 대답했다.
"물론이죠! 다행히도 잘 되었어요!"
"쉽지 않았네만.. 겨우 어떻게 하긴 했다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난 가슴이 벅차올라 대꾸를 하지도 못하였다.
"얼른 나으셔서 수술 받으셔야죠? 그죠?"
"그렇다네. 지금의 상태도 금방 좋아질테니 마음 강하게 먹고 이겨내야 하네"
아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내 몸이 내게 말한다. 이미 늦었다고.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만이라도 나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어디.. 갑자기 또 안 좋아진거예요?"
내 얼굴이 어두워진 것을 그녀가 눈치챈 모양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멀다. 유독 멀리서 들린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아요.
나도.. 빨리 나아서.. 수술 받아..야죠. 크.. 쿨럭..
...그런데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요? 가까이 와서 얘기해줘요.
나... 지금 귀도 잘 안들리니까요"
"예..."
그녀의 발걸음 소리. 탁. 탁.
조금 이상하다.
귀에 소음이 잔잔하게 깔려있어 깨끗하게 들리지는 않는데
발걸음소리가 지나치게 무겁게 들린다.
"수술.. 때문에 아직 몸이 썩.. 좋지는 않은가봐요?"
"네. 아무래도 배를 이만큼이나 잡아쨌으니까요. 헤헷... 크윽"
평소와 같은 싱거운 웃음 뒤의 작은, 그러나 깊은 신음소리.
분명히 들었다.
나는 그녀의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손을 힘껏 뻗어
그 손을 덥썩 잡아챘다.
"꺄악"
그녀를 포함해 놀라는 사람들의 소리가 방안에서 터져나왔다.
"손이.. 손이.."
뿌리치려고 하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미끌한 촉감이다.
"이.. 이거 따.. 땀이예요!"
아니다.
비록 몸상태가 이 지경이 되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꽉 부여잡았던 그녀 손의 느낌은
완연히 기억하고 있는 나이다.
이것은 검은 물이다. 그것도 상당한 량이다.
갑자기 속에서 울컥하는 진동과 함께 또다시 큰 고통이 심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전 쓰러졌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눈을 부릅떠 어떻게든 견디며
떨리는 손으로 더듬어가며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따뜻한 눈물이 흘러내려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고인다.
틀림없는 검은색의 눈물이리라.
"수..술.. 잘 되지.. 않았군..요.."
"......예 .... 죄송... 해요. 흑"
그녀의 울음에 동조한 듯 다시금 고통의 파도가 몸을 강하게 쳐댄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요동칠 때마다 몸이 급격히 죽어가는 것을 느낀다.
몸을 굽히며 움츠려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온다.
지난 번은 어떻게든 견뎠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없다.
이걸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그녀 볼에서 떨어진 내 손을 이번엔 그녀가 강하게 잡고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몸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으로 보아 울고 있는 듯하다.
뭐라고 말하는데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겨우겨우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 입술에 갖다댄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녀는 같은 단어를 울면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바보.
난 괜찮다고,
것보다 구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제길, 입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눈치를 챘을까. 그녀가 내 귀에다 대고 말한다.
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그러니까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돼요.
들린다. 신기하게도 지금의 말은 들린다.
누군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거친 손바닥과 잘 토해내지도 못하는 울연한 울음소리.
미안해요. 할아버지. 끝까지 속만 썩이네요.
숨이 다시 막혀온다. 마지막 밀물인 듯, 이제는 끝이다.
그녀가 나를 다시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 힘에 나도 모르게 눈을 뜨니
그녀 품 속에서 작지만 강한 빛줄기가 느껴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눈이
빛의 흐름을 뚜렷하게 보고 있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빛은 여기에 있었던 것일까.
난 기분좋은 깨달음에
보여지지도 않을 미소를 슬며시 그려대며
길지 않은 생의 끝자락의
마지막 한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다.
빛줄기가 점점 커져와
주위가
환하게 밝아진다.
꽤나 만족스러웠던 시작에 비해
뒷이야기들이 잘 받쳐주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더 많이 읽고 배워서 좀더 나은 스토리로 다시 도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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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5일]
간밤엔 잠을 전혀 이루지 못하였다.
눈을 감으면 환하게 웃는 그녀모습이 어른거리고
수술과 병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그 위에 겹쳐져 눈앞에서 밤새도록 춤을 춰댔다.
즐겁고도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손을 펴보니
어젯밤 그녀의 감촉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느낌이다.
주먹을 꽉 쥐며 되내여본다.
이 느낌 놓치기 싫어.
절대로.
수술은 아침 10시 경.
아침식사를 먹는둥마는둥하고 8시 정도에 병원에 갔는데,
그녀는 이미 와서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다가
날 보더니 귀엽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댔다.
그 미소에 괜히 가슴이 두근했다.
오늘은 왠지 감이 좋다고 웃으면서 격려해 주었고
그녀 역시 해맑은 미소로 화답하였지만
그 위에 가득 실린 불안을 차마 감추지는 못하였다.
많이 힘들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받는게 좋을 것 같아 그녀에게 먼저 양보를 했는데,
차라리 내가 먼저 수술을 받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되어
할아버지 의사와 아들 의사가 모두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는 대기실에서 TV를 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수술장면을 보고 싶었으나 의사들이 말렸다.
나 역시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이니까. 그편이 옳다.
병원은 대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다.
대기실에는 손님이 한 세 명 정도 앉아있고
간호사 한두명이 들락날락할 뿐이다.
시간은 빨리 흘러 금세 12시경이 되었는데
보통 이런 수술의 얼마나 걸리는지, 얼마나 걸려야 정상인지조차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잘 되고 있긴 한 걸까.
화장실에나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순간, 갑자기
왼쪽 심장 부근이 콱 조여왔다. 아찔한 아픔이 터져온다.
숨이 확 막혀와서 내쉴 수도 들이쉴 수도 없다.
눈 앞이 일순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폭풍이라도 치는듯 커다란 소음이 들려온다.
다리를 제대로 지탱할 수 없어 테이블에 몸을 기대니
고통이 심장쪽에서 온 몸 구석구석으로 삽시간에 퍼지고
전신의 신경이 찢어지는 듯 격렬히 반응해왔다.
난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뺨을 땅바닥에 부빌듯한 자세로 쓰러져버린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귀속에서 파열하는 소음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다.
심장쪽에서부터라면 역시 그 녀석,
그 재수없게 생긴 시커먼 녀석으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땅바닥에서 헐떡이며 생각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턱밑을 조르며 압박해오는 고통에 숨을 더 가누지 못하고
그만 의식의 끈을 놓아버린다.
아주 잠깐, 그녀의 우는 얼굴이 눈 앞에 떠오르다 사라진다.
[XXXX년 X월 X일]
눈을 뜬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어딜까.
나는 지금...
그래. 누워있다. 병원침대인듯하다.
왼쪽 가슴이 피부의 낫지않은 상처자국처럼 몹시 아리고 쏘는듯한 느낌인데
그래도 한결 낫다. 여전히 전신이 찌릿찌릿하지만 제법 견딜만 하고
귀안에서 울부짖던 소음도 상당히 작아졌다.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팔 다리, 목을 움직여보니 수월치는 않지만 다행히 조금씩은 움직여진다.
겨우 몸을 일으켜세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평소처럼 한 15분 정도 있으면 시력이 돌아와주려나?
아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평소와는 완연히 다른 몸이 되어있다.
나는 기어이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 같다.
"아. 아. 아"
목소리가 나온다. 말은 할 수 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후다닥 달려와 내 손을 벌컥 잡는다.
"괜찮냐?! 정신이 좀 들어?!"
이 목소리는.. 할아버지다.
"아 오셨어요?.. 여기는 어떻게.."
"연락받고 왔지 녀석아. 며칠 동안 깨어나지도 못하고..
상태가 말이 아니구나 말이.."
"아.. 이젠..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때마침 문이 열리며 사람들 여럿이 급히 들어온다.
그녀의 향기가 난다. 알 수 있다.
보고싶은데 눈이 보이지가 않아. 보고싶은데.
의사들이 동태를 묻고는 이런저런 수치 등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들어보니 한 3일은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한다.
"좀 괜찮아요? 정말.. 어떡해요..."
울먹이는 목소리. 그녀다.
"아아. 걱정하지 말아요. 금방 일어날테니까"
빛을 잃은 후 가장 늘은 것, 거짓말이다.
"그보다.. 수술은 어땠나요?.. 성공했나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녀와 의사가 동시에 대답했다.
"물론이죠! 다행히도 잘 되었어요!"
"쉽지 않았네만.. 겨우 어떻게 하긴 했다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난 가슴이 벅차올라 대꾸를 하지도 못하였다.
"얼른 나으셔서 수술 받으셔야죠? 그죠?"
"그렇다네. 지금의 상태도 금방 좋아질테니 마음 강하게 먹고 이겨내야 하네"
아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내 몸이 내게 말한다. 이미 늦었다고.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만이라도 나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어디.. 갑자기 또 안 좋아진거예요?"
내 얼굴이 어두워진 것을 그녀가 눈치챈 모양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멀다. 유독 멀리서 들린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아요.
나도.. 빨리 나아서.. 수술 받아..야죠. 크.. 쿨럭..
...그런데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요? 가까이 와서 얘기해줘요.
나... 지금 귀도 잘 안들리니까요"
"예..."
그녀의 발걸음 소리. 탁. 탁.
조금 이상하다.
귀에 소음이 잔잔하게 깔려있어 깨끗하게 들리지는 않는데
발걸음소리가 지나치게 무겁게 들린다.
"수술.. 때문에 아직 몸이 썩.. 좋지는 않은가봐요?"
"네. 아무래도 배를 이만큼이나 잡아쨌으니까요. 헤헷... 크윽"
평소와 같은 싱거운 웃음 뒤의 작은, 그러나 깊은 신음소리.
분명히 들었다.
나는 그녀의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손을 힘껏 뻗어
그 손을 덥썩 잡아챘다.
"꺄악"
그녀를 포함해 놀라는 사람들의 소리가 방안에서 터져나왔다.
"손이.. 손이.."
뿌리치려고 하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미끌한 촉감이다.
"이.. 이거 따.. 땀이예요!"
아니다.
비록 몸상태가 이 지경이 되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꽉 부여잡았던 그녀 손의 느낌은
완연히 기억하고 있는 나이다.
이것은 검은 물이다. 그것도 상당한 량이다.
갑자기 속에서 울컥하는 진동과 함께 또다시 큰 고통이 심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전 쓰러졌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눈을 부릅떠 어떻게든 견디며
떨리는 손으로 더듬어가며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따뜻한 눈물이 흘러내려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고인다.
틀림없는 검은색의 눈물이리라.
"수..술.. 잘 되지.. 않았군..요.."
"......예 .... 죄송... 해요. 흑"
그녀의 울음에 동조한 듯 다시금 고통의 파도가 몸을 강하게 쳐댄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요동칠 때마다 몸이 급격히 죽어가는 것을 느낀다.
몸을 굽히며 움츠려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온다.
지난 번은 어떻게든 견뎠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없다.
이걸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그녀 볼에서 떨어진 내 손을 이번엔 그녀가 강하게 잡고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몸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으로 보아 울고 있는 듯하다.
뭐라고 말하는데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겨우겨우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 입술에 갖다댄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녀는 같은 단어를 울면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바보.
난 괜찮다고,
것보다 구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제길, 입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눈치를 챘을까. 그녀가 내 귀에다 대고 말한다.
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그러니까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돼요.
들린다. 신기하게도 지금의 말은 들린다.
누군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거친 손바닥과 잘 토해내지도 못하는 울연한 울음소리.
미안해요. 할아버지. 끝까지 속만 썩이네요.
숨이 다시 막혀온다. 마지막 밀물인 듯, 이제는 끝이다.
그녀가 나를 다시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 힘에 나도 모르게 눈을 뜨니
그녀 품 속에서 작지만 강한 빛줄기가 느껴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눈이
빛의 흐름을 뚜렷하게 보고 있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빛은 여기에 있었던 것일까.
난 기분좋은 깨달음에
보여지지도 않을 미소를 슬며시 그려대며
길지 않은 생의 끝자락의
마지막 한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다.
빛줄기가 점점 커져와
주위가
환하게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