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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게 자유를 달라

문★성 2007.07.16 12:43 조회 수 : 190

출장가는 길에 읽으려고 집에서 챙겨온 책이
짐콜린스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과 ‘Good to Great’.
나름 ‘경영’이라는 주제하에 세트로 잘 묶어서 들고오긴 했는데
서울 올라오면서 막상 생각해보니 마냥 마음 편하게 가는 출장도 아닌데
그걸 시위라도 하듯 너무 딱딱한 책만 들고온게 아닌가 싶었다.

자고로 인생은 균형적이어야 되는 법, 고로 책 하나를 더 사기로 했다.
일단 들고다니기 무겁지 않아야 되고
내용 역시 그 못지 않게 가벼울 것을 전제로하여
서점에서 한참을 고르다가 겨우 건져온 것이
‘옥수수빵파랑’이라는 만화가 이우일씨의 수필집.
내용이나 무게가 가벼워서인지 비행기 타자마자
그야말로 빈속에 라면 말아 먹듯이 후다닥 읽어치웠다.

이 분 만화야 애초부터 개성의 있고없고를 떠나
절대 호감가는 스타일은 아니라 생각해왔던 터이고,
글 역시 그리 독특하다거나 잘 쓴다 싶지는 않았는데
아아. 이 분과 그 가족의 사는 모습은 부러울 정도로 개성적이고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의 상처가 있다고 하여 항상 가지각색의 두건을 두르고 다니며
신혼여행을 열달씩이나 다녀왔다가 이듬해 갔던 곳을 또 여행가고
출퇴근이나 직장상사의 압박 없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여전히 장난감을 모으고 수염을 길렀다 잘랐다 맘대로 하며
아내, 딸과 친구처럼 유치하게 사는 모습..
휘청. 난 다시 흔들려버린다.

몇 년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읽을 때도 그랬다.
집에서 글 쓰는 작가인지라 남자들은 모두 출근한 평일 오전,
느즈막히 장을 보며 동네 아주머니들의 눈치를 살피는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는데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늦어도 쉰살에는 나도 저러고 살아야지 하고 결심했던게 아마 그 때부터였지 싶다.

물론 지금의 나를 고찰해보면,
아니 고찰까지 할 것 없이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이,  
큰 모험 한 번 하지 않고 주류에 편승하여 남들 하는대로 공부하고
남들 하는대로 취업 준비한 결과로 형성된
‘지극히 전형적인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넥타이도 매지 않고 출퇴근 지옥에 시달리자도 않으며
제법 상쾌한 문화를 가진 기업에서 7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특이한 스타일을 구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한들 회사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일하고 월급받는 것은 매한가지.
그레꼬로망형이든 자유형이든 레슬링은 레슬링이고
앉아서 쏘든 서서 쏘든 사격은 사격일 수밖에 없듯 장르 자체는 다르지 않다.
월급이 지금보다 한 두 배쯤 되면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치파 젊을 때야 엎어서 자든 새우잠을 자든 하나하나가 경험이 되는 것이고
현재의 일이나 환경에도 만족하고 있으니
종합평점은 여전히 ‘아따 거시기 겁나게 감사합니다’일 뿐이다.

허나 문제는 앞으로다.
이대로라면 십년 뒤, 이십 년 뒤에도 여전히
역시 지극히 전형적인 대한민국 샐러리맨으로서
갖은 직장 스트레스에 관두고 싶다 주문을 외우고 다닐 것이며
대출 받아 아파트 구입한 후 십년거치 이십년 상환으로 겨우겨우 갚아나가며
다른 아빠들처럼 자식 교육에 월급 반쯤 때려부으면서 헉헉거리다가
나이 지긋히 들고 문부장님 소리쯤 듣게 되면 은근히 눈치주는
회사 發 압박에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포장마차에서 소주나 기울이며
한숨 내쉴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아 이거 섬짓한 걸.

다시 말해
스물아홉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은 전형적이어도 나름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데
마흔아홉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은 전형적이기에 재미도 없고 박진감도 없어보인다.
이우일씨나 하루키씨 사는 것에 비하면 으아아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만큼 별로다.

물론 너무 뻔하고 무능력한 샐러리맨의 모습으로 살지 않기 위해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같은 ‘아따 거시기 겁나게’ 재미없는 책도
들고다니고 영어공부하고 회사일에도 열심을 다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난 자유가 부럽다. 틀에 박히지 않은 삶의 모습에 애가 달고 애가 탄다.
내게는 로또 당첨자보다, 우리 회사 문사장님보다,
하다못해 나랑 동갑내기 어느 연예인이나 유명운동선수의 생활보다
더 멋져보이는 것이 프리랜서들의 삶과 그들이 누리는 자유인 셈이다.

목표로 하는 삶의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를 진저
나로서는 늦게라도 인지하게 된 것이 그나마의 다행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유노윤호나, 잭 웰치나 박지성 등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도 해도 참 잘한 일 아닌가. 칭찬할만하다.
시작이 늦었기에 달성도 늦을 수밖에 없겠지만
늦게 달성하는 만큼 오래 살면 되는거니까 그건 별 문제 되지 않으리라.

다짐컨대,
오십살의 나는 어깨죽지까지 찰랑거리는 장발을 휘날리며
(중년탈모를 극복했다는 가정하에)
살짝 전성기의 찬호팍처럼 수염도 기르고
(아마 아내는 기를 쓰고 말리겠지만)
나시티 밖으로 삐져나온 근육질의 팔뚝을 자랑하며
(이두 못지 않게 삼두박근이 잘 빠져야 된다)
지금의 샴푸나 아니면 그보다 더 예쁘고 귀여운 자전거타고
(이건 샴푸한테는 비밀인데)
이마트에 쇼핑하러 가는거다.

남자의 쇼핑은 자고로 평일 느즈막한 오전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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