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응없어도 끝까지 갑니다 -_-;
지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세요.
□ 빛을 잃었습니다 - 첫번째
□ 빛을 잃었습니다 - 두번째
□ 빛을 잃었습니다 - 세번째
[2006년 12월 23일]
하루가 지났지만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섬뜩하다는 것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검은 덩어리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어제,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땅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거나 작은 목소리로 울음을 삼키는게 고작이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늙은 의사가 진료실 내의 불쾌한 정적을 깨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수술, 한 번, 맡겨 보실라우?
“예? “
“아버지?!”
젊은 의사가 벌떡 일어나며 늙은 의사를 바라보았다. 부자관계였던 모양이다.
“선생님! 수술,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아아. 해본 적이 있네. 한 이십여 년 전쯤에. 좀 오래됐지만… 그 때의 감각은 기억하고 있네만”
“아버지! 저.. 저한테는 아무런 말씀 안 하셨잖아요”
“…”
“아버지??”
다그치는 아들의 목소리에 노인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지난 달 그 환자에게도 차마 시술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게 의사된 도리 아니겠냐고”
“선생님”
“걱정하지 말게나. 좀 오래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는지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네.
비록 조금 늙긴 했지만 그 때보다 경험도 많이 쌓였고 옆에 나보다 나은 아들놈도 있으니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걸세. 그리고. 그리고, 실패해도 나쁠 건 없을게,
혹 실패해도 수명이 단축되었다거나 하지는 않을거니까. 20년 전에도 그랬었네”
성공하지 못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이거 해볼만한 모험이다.
“.. 그 때는.. 왜 실패한거죠?”
아들 의사가 물었다.
“움직여…”
“예?”
“여기 이 시커면 녀석이.. 이번에도 분명히 그러겠지만.. 움직이네. 피한다는 말야”
“그렇다면 이번에도 힘들다는 것 아닌가요?”
“힘들지. 힘들지. 암 힘들지. 헌데 모든 수술이 다 힘들어.
암도 힘들고 손톱만한 종양도 힘들지.
허나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사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번엔 성공할걸세. 반드시”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 단어 한 단어를 뚜렷히 말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전의 실패가 꽤나 아프게 남아있는 듯했다.
“받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J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괜찮겠어요?”
“어차피 안 받으면 죽는 거잖요. 이런 녀석을 몸에 달고 살 바엔 하루라도 빨리 죽는게 나아요.”
약한 것 같지만 이 사람, 강하다.
그 사이 아들 의사가 책상에서 다른 사진 하나를 가져왔다. 내 사진이었다.
역시나 같은 종류의 덩어리가 보였다. 크기는 대동소이했는데
그녀의 것과는 달리 아주 슬픈 표정이었다.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표정의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길 없지만 일단 수술은 둘 다 받기로 했고
그녀에게 먼저 받으라고 양보했다.
그녀가 상태가 더 안 좋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받는게 좋을 것이다.
의사는 준비할 시간을 요구했고 이틀 뒤 크리스마스에 그녀부터 먼저 수술하기로 했다.
당연히 그녀의 수술이 실패하면 내 수술은 없다.
의사는 금지할 음식도 몸의 안정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잘 쉬다가 오라고 했다.
어차피 먹으면 절반은 게워내는 것이 요 며칠의 상태이고
몸의 안정 따위 빛을 잃은 지금 찾을 수 있을리 만무하니
어찌보면 의사가 현명한 선택을 내려준 셈이다.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
올해 크리스마스는 수술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니
내년에는 꼭 회복되어 건강한 몸으로 남들처럼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이면,
이왕이면 J, 그녀와 함께라면 좋겠다.
[200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여느 때처럼 걸려온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J의 전화가 왔다.
먼저 전화하고 싶었지만 지난 번 거절이 마음에 걸려 차마 하지 못했었는데
그녀가 먼저 나를 찾은 것이다.
바쁘냐고 했다. 아니라고 했다
.
오늘 시간이 있냐고 했다. 많다고 했다.
그럼 만날 수 있냐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일의 수술을 앞두고 혼자 집에 있기가 무서워서인지
크리스마스 이브라 외로워서 그런 것인 것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나를 찾아준 것만으로 기쁠 뿐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나보다 먼저 약속장소에 와있었다.
하루 못 봤을 뿐인데 멀리서 그녀를 발견하는순간 뛰어가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단순히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공감 때문만은 아니다.
고백하건대 그녀는 내 마음 속에 깊이 들어와있는 것이다.
둘 다 몸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우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얘기하고 같이 영화보고 함께 밥먹고 나란히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술 얘기, 빛을 잃어버린 얘기는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그저 이 아름답고 복된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기 위해 만난
갓 시작하는 연인들과 다름이 없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어느새 밤이 되었고 우리는 전망이 제법 괜찮은 바로 갔다.
둘 다 무알콜의 가벼운 음료수를 마셔야 했지만 조명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마치 취한 사람처럼 발그스레했다. 필경 나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 분위기를 탔기 때문일까. 그녀가 돌연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저… 저 참 이런 말 못하는데…그래도 할게요"
"...뭔데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다행인 것 있죠.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요”
“아. 병은, 아직 치료된 것도 아닌데요 뭘.. 그리고 수술이 성공하면 그건 의사선생님 덕분이죠”
“아뇨. 치료에 대한 감사는 나중에 할거고요.
그냥 지금은,
지금은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요 며칠, 가장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기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나. 너무 무섭고 힘들었던 거 있죠. 당신을 하루만 늦게 알게 되었어도 어떻게 되었을 거만 같아요.
고마워요. 내일 수술이 실패한다해도, 당신에게 너무 고마워요.”
분에 넘치는 감사. 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계속할게요. 오늘 아니면 영영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말예요. 집에 있으면 병 생각만 하고 끝도 없이 울었는데..
요즘은 당신 생각을 해요. 웃어요. 당신 생각을 하면서 웃어요.
이게 무슨 감정인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당신이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래요”
“며칠전 저녁 같이 먹자고 했을 땐.. 너무 놀라고 떨려 나도 모르게 그만 거절해버린거 있죠.
저 그 날 집에 가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오늘 전화할 때도 많이 망설였는데.. 나와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지금 제가 너무 부담드리고 있죠? 죄송해요..."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내가 그녀에 대해 생각했던 그대로를 말하는 그녀.
그녀 말대로 내일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오는 용기일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나는 왜 그렇게 모든 일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했던 것일까.
며칠 안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난 오늘이 아니면 영영하지 못할 수도 있는 내 마음 속의 말을 하기로 했다.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놓여진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당신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 같은데, 이거 어쩌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얼굴 가득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상하다. 난 분명 빛을 잃었는데, 하나 남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에 그녀의 눈물에 그녀의 온기에 그녀의 미소에
마음과 몸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다.
잃어버린 빛이 모조리 돌아오는 것만 같다.
이대로 그녀와 내가 깨끗하게 나아버리지는 않을까.
마치 영화처럼 사랑의 힘으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아니, 이런 벅차오르는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면 빛 따위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미 지금의 난 세상 누구보다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을테니까.
(다음 회로 “빛을 잃었습니다”는 막을 내립니다. 과연 결말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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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을 잃었습니다 - 첫번째
□ 빛을 잃었습니다 - 두번째
□ 빛을 잃었습니다 - 세번째
[2006년 12월 23일]
하루가 지났지만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섬뜩하다는 것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검은 덩어리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어제,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땅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거나 작은 목소리로 울음을 삼키는게 고작이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늙은 의사가 진료실 내의 불쾌한 정적을 깨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수술, 한 번, 맡겨 보실라우?
“예? “
“아버지?!”
젊은 의사가 벌떡 일어나며 늙은 의사를 바라보았다. 부자관계였던 모양이다.
“선생님! 수술,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아아. 해본 적이 있네. 한 이십여 년 전쯤에. 좀 오래됐지만… 그 때의 감각은 기억하고 있네만”
“아버지! 저.. 저한테는 아무런 말씀 안 하셨잖아요”
“…”
“아버지??”
다그치는 아들의 목소리에 노인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지난 달 그 환자에게도 차마 시술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게 의사된 도리 아니겠냐고”
“선생님”
“걱정하지 말게나. 좀 오래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는지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네.
비록 조금 늙긴 했지만 그 때보다 경험도 많이 쌓였고 옆에 나보다 나은 아들놈도 있으니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걸세. 그리고. 그리고, 실패해도 나쁠 건 없을게,
혹 실패해도 수명이 단축되었다거나 하지는 않을거니까. 20년 전에도 그랬었네”
성공하지 못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이거 해볼만한 모험이다.
“.. 그 때는.. 왜 실패한거죠?”
아들 의사가 물었다.
“움직여…”
“예?”
“여기 이 시커면 녀석이.. 이번에도 분명히 그러겠지만.. 움직이네. 피한다는 말야”
“그렇다면 이번에도 힘들다는 것 아닌가요?”
“힘들지. 힘들지. 암 힘들지. 헌데 모든 수술이 다 힘들어.
암도 힘들고 손톱만한 종양도 힘들지.
허나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사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번엔 성공할걸세. 반드시”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 단어 한 단어를 뚜렷히 말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전의 실패가 꽤나 아프게 남아있는 듯했다.
“받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J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괜찮겠어요?”
“어차피 안 받으면 죽는 거잖요. 이런 녀석을 몸에 달고 살 바엔 하루라도 빨리 죽는게 나아요.”
약한 것 같지만 이 사람, 강하다.
그 사이 아들 의사가 책상에서 다른 사진 하나를 가져왔다. 내 사진이었다.
역시나 같은 종류의 덩어리가 보였다. 크기는 대동소이했는데
그녀의 것과는 달리 아주 슬픈 표정이었다.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표정의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길 없지만 일단 수술은 둘 다 받기로 했고
그녀에게 먼저 받으라고 양보했다.
그녀가 상태가 더 안 좋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받는게 좋을 것이다.
의사는 준비할 시간을 요구했고 이틀 뒤 크리스마스에 그녀부터 먼저 수술하기로 했다.
당연히 그녀의 수술이 실패하면 내 수술은 없다.
의사는 금지할 음식도 몸의 안정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잘 쉬다가 오라고 했다.
어차피 먹으면 절반은 게워내는 것이 요 며칠의 상태이고
몸의 안정 따위 빛을 잃은 지금 찾을 수 있을리 만무하니
어찌보면 의사가 현명한 선택을 내려준 셈이다.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
올해 크리스마스는 수술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니
내년에는 꼭 회복되어 건강한 몸으로 남들처럼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이면,
이왕이면 J, 그녀와 함께라면 좋겠다.
[200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여느 때처럼 걸려온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J의 전화가 왔다.
먼저 전화하고 싶었지만 지난 번 거절이 마음에 걸려 차마 하지 못했었는데
그녀가 먼저 나를 찾은 것이다.
바쁘냐고 했다. 아니라고 했다
.
오늘 시간이 있냐고 했다. 많다고 했다.
그럼 만날 수 있냐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일의 수술을 앞두고 혼자 집에 있기가 무서워서인지
크리스마스 이브라 외로워서 그런 것인 것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나를 찾아준 것만으로 기쁠 뿐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나보다 먼저 약속장소에 와있었다.
하루 못 봤을 뿐인데 멀리서 그녀를 발견하는순간 뛰어가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단순히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공감 때문만은 아니다.
고백하건대 그녀는 내 마음 속에 깊이 들어와있는 것이다.
둘 다 몸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우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얘기하고 같이 영화보고 함께 밥먹고 나란히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술 얘기, 빛을 잃어버린 얘기는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그저 이 아름답고 복된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기 위해 만난
갓 시작하는 연인들과 다름이 없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어느새 밤이 되었고 우리는 전망이 제법 괜찮은 바로 갔다.
둘 다 무알콜의 가벼운 음료수를 마셔야 했지만 조명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마치 취한 사람처럼 발그스레했다. 필경 나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 분위기를 탔기 때문일까. 그녀가 돌연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저… 저 참 이런 말 못하는데…그래도 할게요"
"...뭔데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다행인 것 있죠.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요”
“아. 병은, 아직 치료된 것도 아닌데요 뭘.. 그리고 수술이 성공하면 그건 의사선생님 덕분이죠”
“아뇨. 치료에 대한 감사는 나중에 할거고요.
그냥 지금은,
지금은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요 며칠, 가장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기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나. 너무 무섭고 힘들었던 거 있죠. 당신을 하루만 늦게 알게 되었어도 어떻게 되었을 거만 같아요.
고마워요. 내일 수술이 실패한다해도, 당신에게 너무 고마워요.”
분에 넘치는 감사. 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계속할게요. 오늘 아니면 영영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말예요. 집에 있으면 병 생각만 하고 끝도 없이 울었는데..
요즘은 당신 생각을 해요. 웃어요. 당신 생각을 하면서 웃어요.
이게 무슨 감정인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당신이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래요”
“며칠전 저녁 같이 먹자고 했을 땐.. 너무 놀라고 떨려 나도 모르게 그만 거절해버린거 있죠.
저 그 날 집에 가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오늘 전화할 때도 많이 망설였는데.. 나와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지금 제가 너무 부담드리고 있죠? 죄송해요..."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내가 그녀에 대해 생각했던 그대로를 말하는 그녀.
그녀 말대로 내일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오는 용기일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나는 왜 그렇게 모든 일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했던 것일까.
며칠 안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난 오늘이 아니면 영영하지 못할 수도 있는 내 마음 속의 말을 하기로 했다.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놓여진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당신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 같은데, 이거 어쩌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얼굴 가득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상하다. 난 분명 빛을 잃었는데, 하나 남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에 그녀의 눈물에 그녀의 온기에 그녀의 미소에
마음과 몸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다.
잃어버린 빛이 모조리 돌아오는 것만 같다.
이대로 그녀와 내가 깨끗하게 나아버리지는 않을까.
마치 영화처럼 사랑의 힘으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아니, 이런 벅차오르는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면 빛 따위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미 지금의 난 세상 누구보다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을테니까.
(다음 회로 “빛을 잃었습니다”는 막을 내립니다. 과연 결말은-_-)
과연.. 결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