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의 눈을 생각합니다]
베이징으로 출장갔다 돌아오는길.
승객의 90%는 골프여행 및 단체관광을 다녀온 한국의 아저씨/아주머니들이었다.
공항 오기전 술을 거하게들 하신듯 알코올냄새와 혀꼬부라짐을 동반한 주정이 여기저기서
풍겨왔고 내 뒷자리 나이드신 아저씨는 두 시간 내내 내 자리를 밀고 치고 발로 차고 하더니
급기야는 일어서다 내 머리카락을 한웅큼 잡아 당겨버리기까지 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던 것은 뭐, 어디 한 두번 경험하는 일인가.
이윽고 쿠쿵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인천공항 활주로에 닿았고
바퀴로 땅을 깊이 눌러가며 스스로를 달래기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기내에서는 또 하나의 굉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지휘라도 한 듯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안전벨트를 찰카닥 풀어제낀것이다.
비행기는 여전히 활주로를 달리고 있고 안전벨트 표시등은 그대로였으며
아무 방송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사불란, 신기할만큼 동시에
우리의 아저씨/아주머니들은 간결하면서도 통일된 동작을 보여주었다.
이후 비행기가 게이트까지 굴러가 완전히 선 후 안전벨트 등이 꺼질 때까지의
수십분동안 웃지못할 장경들이 잇달아 벌어졌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은 약과,
벌써 가방을 챙겨들고 문 앞으로 걸어가다 제지당해 자리로 쫓겨가는 할아버지,
일어서 오버헤드빈에서 캐리어를 내리기 시작하는 기십명의 관광객들,
복도에 서있다가 스튜어디스가 앉아달라 연거푸 방송하니
그만 바닥에 철퍼덕 앉아버리는 아주머니,
여러분 앉으세요! 앉으세요! 하며 소리를 질러대지만 정작 자기는 서 있는 젊은이까지.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뭐가 그리 바쁜 것인지.
에티켓을 모른다고 질타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건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을 넘어
몇 번씩 당부하고 가르치고 사정해도 꿈쩍하지 않는 저 강인함은 무엇인가.
스튜어디스가 하다못해 직접 뛰어가 팔을 붙잡고 뜯어말려야 겨우 움직여주는,
규범과 규정을 어기는 것이 당연한 것인양 여기는 천연덕스러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그 항공편을 통해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이 있었다면,
한국인과 한국인의 문화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필시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고 마음 속에 자리잡혔을 선입관은
추후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터이다.
물론 이런 면면들이 전체를 진실되게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사람들은 일부만 보고 전체를 가늠하기 십상.
내가 미국의 작은 소도시에 머물면서 그들의 준법정신이나 에티켓에 반해버려
미국에 대한 생각이 180도 뒤집힌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분명 내 머리는 미국이 심각한 사회적 질병들을 많이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고,
분명 내 눈은 내가 받은 감동의 이유들이 대도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자리잡힌 생각은 여전히 입장순서에 의거하여
상석을 차지, 좀처럼 비켜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조국, 내 고향인데 이왕이면 좀 좋게 인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경제적 효과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마음, 애국심이라고 이름 붙이면 억지일까나.
난 아직 버킹엄 궁전, 그 세계 곳곳의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려든 명승지 앞에서
가래침을 퉤 뱉은 후 한국말로 욕지거리를 내뱉던 이십대 커플과
그 때 느낀 나의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잊지 못한다.
.
[나의 눈을 생각합니다]
고백하건데 난 한국인인 것을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야 우리나라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만만세였지만
나이들어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의 진정한 문제는, 참으로 못난 점은 선진국이 아닌 나라,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잘산다, 잘 나간다라 인정받지 못한 나라에 대해서는
또 묘한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 있을 때의 난 어떻게든 그 나라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날 외국인으로 대하지 않고 마치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대해주면
왠지 뿌듯함을 느끼면서 기분이 좋았고 그러한 반응을 얻기 위해 영어도
더 빨리 쓴다거나 매사에 익숙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혀를 꼬아가며 슬랭까지 쓴다 할지라도
얼마못가 곧 외국인임이 밝혀지곤 했다. 몇 마디만 나눠봐도 다 알 수 있는 거니까.
반대로 중국이나 대만 등에 갔을 때는 현지사람이 아닌 한국인으로 보이고 싶어했다.
중국사람이 보기에 난 어김없이 중국사람처럼 생겨먹었고(눈도 작고)
호텔에서든 식당에서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중국어로 말을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거다. 미국이나 영국에서에서 받고 싶어하던 대접을
중국에서 받는 것인데 오히려 반대로 느껴진다는 것, 이것은 차별이다.
선진국에서는 그들과 똑같은 수준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같음'을 주장하지만
중국 같은 나라에 대한 편견은 아직 깨어지지 않은터라
'다름'을 강조하며 괜히 어깨 한 번 으슥거려본다는 거다.
업무상 같이 일하는 외국 여자 중 두 명을 소개하자면
둘 다 킴벌리클라크 소속이고 똑같이 79년생에 제품개발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성격도 밝고 웃음도 많은 것이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미국사람과 다닐 때와 중국사람과 다닐 때와의 기분은 크게 달랐는데
나랑 출장을 같이간 과장님만 하더라도 저 미국애하고는 같이 어울리려고
부던히 애썼지만 중국애하고는 사진 한 장 안 찍으셨다니까.
꼭 미국애가 이쁘고 중국애가 이쁘지 않아서도 아니다. (미국애는 게다가 유부녀)
서양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동경, 동양에 대한 한층 더 막연한 우월의식,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킨 것이다. 나부터가 그걸 느낀다.


공평한 마음가짐을 가져야할 것이다.
블랑카 아저씨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갖은
구박 및 탄압을 콤보로 일삼으면서도 사고친 주한미군들에게는
제대로 법적인 대꾸도 하지 못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공평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당한 만큼 약자에게 갚아주는 것은 결코 강자도 아니고 약자도 아닌
그저 못난자인 것이다.
선진국이니 후진국이니, 백인이니 황인이니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하고 정당하게 대해주어야한다. 나 또한 그렇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마음을 익히지 못하는 한,
즉 '나의 눈'을 바꾸지 않는한 한국을 처음 만나는 '외국인의 눈'을
바꾸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어글리 코리안이란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끄적인 글)
베이징으로 출장갔다 돌아오는길.
승객의 90%는 골프여행 및 단체관광을 다녀온 한국의 아저씨/아주머니들이었다.
공항 오기전 술을 거하게들 하신듯 알코올냄새와 혀꼬부라짐을 동반한 주정이 여기저기서
풍겨왔고 내 뒷자리 나이드신 아저씨는 두 시간 내내 내 자리를 밀고 치고 발로 차고 하더니
급기야는 일어서다 내 머리카락을 한웅큼 잡아 당겨버리기까지 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던 것은 뭐, 어디 한 두번 경험하는 일인가.
이윽고 쿠쿵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인천공항 활주로에 닿았고
바퀴로 땅을 깊이 눌러가며 스스로를 달래기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기내에서는 또 하나의 굉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지휘라도 한 듯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안전벨트를 찰카닥 풀어제낀것이다.
비행기는 여전히 활주로를 달리고 있고 안전벨트 표시등은 그대로였으며
아무 방송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사불란, 신기할만큼 동시에
우리의 아저씨/아주머니들은 간결하면서도 통일된 동작을 보여주었다.
이후 비행기가 게이트까지 굴러가 완전히 선 후 안전벨트 등이 꺼질 때까지의
수십분동안 웃지못할 장경들이 잇달아 벌어졌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은 약과,
벌써 가방을 챙겨들고 문 앞으로 걸어가다 제지당해 자리로 쫓겨가는 할아버지,
일어서 오버헤드빈에서 캐리어를 내리기 시작하는 기십명의 관광객들,
복도에 서있다가 스튜어디스가 앉아달라 연거푸 방송하니
그만 바닥에 철퍼덕 앉아버리는 아주머니,
여러분 앉으세요! 앉으세요! 하며 소리를 질러대지만 정작 자기는 서 있는 젊은이까지.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뭐가 그리 바쁜 것인지.
에티켓을 모른다고 질타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건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을 넘어
몇 번씩 당부하고 가르치고 사정해도 꿈쩍하지 않는 저 강인함은 무엇인가.
스튜어디스가 하다못해 직접 뛰어가 팔을 붙잡고 뜯어말려야 겨우 움직여주는,
규범과 규정을 어기는 것이 당연한 것인양 여기는 천연덕스러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그 항공편을 통해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이 있었다면,
한국인과 한국인의 문화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필시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고 마음 속에 자리잡혔을 선입관은
추후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터이다.
물론 이런 면면들이 전체를 진실되게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사람들은 일부만 보고 전체를 가늠하기 십상.
내가 미국의 작은 소도시에 머물면서 그들의 준법정신이나 에티켓에 반해버려
미국에 대한 생각이 180도 뒤집힌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분명 내 머리는 미국이 심각한 사회적 질병들을 많이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고,
분명 내 눈은 내가 받은 감동의 이유들이 대도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자리잡힌 생각은 여전히 입장순서에 의거하여
상석을 차지, 좀처럼 비켜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조국, 내 고향인데 이왕이면 좀 좋게 인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경제적 효과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마음, 애국심이라고 이름 붙이면 억지일까나.
난 아직 버킹엄 궁전, 그 세계 곳곳의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려든 명승지 앞에서
가래침을 퉤 뱉은 후 한국말로 욕지거리를 내뱉던 이십대 커플과
그 때 느낀 나의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잊지 못한다.
.
[나의 눈을 생각합니다]
고백하건데 난 한국인인 것을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야 우리나라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만만세였지만
나이들어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의 진정한 문제는, 참으로 못난 점은 선진국이 아닌 나라,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잘산다, 잘 나간다라 인정받지 못한 나라에 대해서는
또 묘한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 있을 때의 난 어떻게든 그 나라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날 외국인으로 대하지 않고 마치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대해주면
왠지 뿌듯함을 느끼면서 기분이 좋았고 그러한 반응을 얻기 위해 영어도
더 빨리 쓴다거나 매사에 익숙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혀를 꼬아가며 슬랭까지 쓴다 할지라도
얼마못가 곧 외국인임이 밝혀지곤 했다. 몇 마디만 나눠봐도 다 알 수 있는 거니까.
반대로 중국이나 대만 등에 갔을 때는 현지사람이 아닌 한국인으로 보이고 싶어했다.
중국사람이 보기에 난 어김없이 중국사람처럼 생겨먹었고(눈도 작고)
호텔에서든 식당에서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중국어로 말을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거다. 미국이나 영국에서에서 받고 싶어하던 대접을
중국에서 받는 것인데 오히려 반대로 느껴진다는 것, 이것은 차별이다.
선진국에서는 그들과 똑같은 수준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같음'을 주장하지만
중국 같은 나라에 대한 편견은 아직 깨어지지 않은터라
'다름'을 강조하며 괜히 어깨 한 번 으슥거려본다는 거다.
업무상 같이 일하는 외국 여자 중 두 명을 소개하자면
둘 다 킴벌리클라크 소속이고 똑같이 79년생에 제품개발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성격도 밝고 웃음도 많은 것이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미국사람과 다닐 때와 중국사람과 다닐 때와의 기분은 크게 달랐는데
나랑 출장을 같이간 과장님만 하더라도 저 미국애하고는 같이 어울리려고
부던히 애썼지만 중국애하고는 사진 한 장 안 찍으셨다니까.
꼭 미국애가 이쁘고 중국애가 이쁘지 않아서도 아니다. (미국애는 게다가 유부녀)
서양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동경, 동양에 대한 한층 더 막연한 우월의식,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킨 것이다. 나부터가 그걸 느낀다.

공평한 마음가짐을 가져야할 것이다.
블랑카 아저씨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갖은
구박 및 탄압을 콤보로 일삼으면서도 사고친 주한미군들에게는
제대로 법적인 대꾸도 하지 못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공평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당한 만큼 약자에게 갚아주는 것은 결코 강자도 아니고 약자도 아닌
그저 못난자인 것이다.
선진국이니 후진국이니, 백인이니 황인이니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하고 정당하게 대해주어야한다. 나 또한 그렇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마음을 익히지 못하는 한,
즉 '나의 눈'을 바꾸지 않는한 한국을 처음 만나는 '외국인의 눈'을
바꾸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어글리 코리안이란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끄적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