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래간만에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끄적여보았다.
글쓴 동기를 막론하고 이런 개인적이고 재미없는 글을 나말고 또 누가 읽어보겠냐는 생각이 우선 들었지만,
그래서 참으로 성의없이 건들거리며 시작하였지만,
글쎄 어느새 난 작품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정도의 각오로 한줄한줄 깊은 생각을 짜내어 키보드 위에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더랬다.
내가 내 자신에게 내 자신을 소개하는 것.
그것은 수신자(문성)와 발신자(문성), 그리고 대상이 되는 주제(문성)의 세 객체가 일치하는데다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고개 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는 선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는 내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을 보는 내 자신을 현혹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의 주제가 되는 내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그렇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더랬다.
싱크대에서는 4~5일은 족히 쌓인듯한 지저분한 식기들이 쉰내를 풍길 차비를 하고 있고
며칠 동안 함부로 벗어던진 옷가지가 방바닥과 침대 위에 널부러져 신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매몰차게 외면한채 열과 성을 다해 써갈긴 나에 대한 이야기는
종내는 앞서 언급한 3자, 즉 세 명의 문성의 실로 오래간만의 회담이었던 셈이다.
자기소개라.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게임은 아직까지 뭔 뜻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수백번은 했고
학교든 모임이든 교회, 학원에서든 대중 앞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문성이어요'식의 소개도
무진장 했었지만 이런 거는 일단 제외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자기소개서 같은 것은 어릴 때 학교에서 몇 번 써봤고
군대 자대배치 받고서도 한 번 제출했었는데 이 역시 숙제 내지 의무로 대충 쓴 것이라
이 역시 신경쓰지 말기로 하자.
그렇다면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는 2003년에 삼성인턴을 지원하면서 쓴 것이 처음이 될 것이고
그 후 2004년 가을에 여섯번 정도 써댔었는데 실상 내용은 거진 다 비슷비슷했던 것 같다.
그 중 SONY에 낸 자기소개서는 영어로 써야했는데 아마 지금 보면 쪽팔려서 북북 잡아찢어버릴 정도의
엉터리 문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열심히 써댔던 일곱장의 자기소개서는
나의 중고고물컴퓨터 하드와 함께 일년 육개월전쯤에 싸그리 다 운명을 달리하셨다.
2003년도 그렇고 2004년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은
그 시절의 난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또한 감성적으로 보나 이성적으로 보나
가진 것도, 해놓은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참한 사실이다.
남들이 열심히 삶과 싸우고 씨름하고 얻어터지며 격전을 벌이고 있던 대학 2, 3학년 때
그래. 난 다 잘 되겠지. 뭐 별일 있겠냐라는 안일함 위에 넘실넘실 배영이나 해대고 있었단 말이다.
아니, 이왕 글 쓰는 거 솔직하게 말하자. 대학간판. 그거 믿고 있었다.
변명이겠지만 내가 대학 1학년 때, 나름 IMF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배도
취업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 1년 선배들이나, 내 친구들이나
심지어 교수님들까지도 우리 앞에는 밝은, 그리고 아주 쉽고 편한 그런 길이 기다리고 있을 줄로만 알고 있었다.
단지 여기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얘기 듣기로는 그 때만 하더라도 취직하는게 그리 어려운 시절은 아니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영어를 하든 못하든 웬만하면 어엿한 대기업 자리 하나씩은 꿰찰 수 있었고
기업에서도 사람이 모자라 닥치는대로 긁어서 채용했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고등학교 때 한시절 빤짝 공부를 열심히 했거나 수능에서 행운의 바가지성 안타를 쳐 진루한 후
대학 내내 그저그런 학점을 유지하며 편안한 포장도로를 정속도로 주행해온
나같은 젊은이들에게 사회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기는커녕 쌍칼을 들이댈 뿐이었다.
영리하고 뭔가 낌새를 눈치챈 몇몇 친구들은 3, 4학년 때부터
고시, 경영동아리, 컨설팅, 인턴, 어학연수 등으로 내공을 증진시키기 시작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 역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듯하고
나 역시 졸업을 코앞에 둔 4학년 2학기 때까지도 자기소개서에 적을 게
인턴경험 하나, 토익점수 하나 밖에 없을 정도로 빈털털이 청년에 불과했다.
변명하자면 거리도 있다. 딴에는 공대라 숙제, 정말 지긋지긋하게 많았고 시험도 쉴새없이 있었다.
유복하지 못한 학창시절이라 과외는 늘 달고 살아야했으며
컴퓨터 게임도 해야했고 소개팅, 미팅, 데이트, 밤새워 술마시기 등
학생 아니면 못할 일들도 '의무감'으로 다 커버해야 했던 바빴던 젊은 날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취업시즌이 다가와 자기소개서 양식을 받아 보았을 때
그 어디에도 소개팅 횟수를 묻고 컴퓨터 게임 수준을 묻는 란은 없었고
숙제가 얼마나 많이 했고 과외는 몇 개를 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내 손에 잡고 있는 능력과 가능성,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 사회였다.
결국 내 자기소개서는 많은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실물'을 보여주기보단 용기, 도전, 창의력, 끈기, 긍정적 등등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데 그쳤고
이러한 '실속'없는 자기소개서를 덜렁덜렁 흔들어대며 싱글싱글 전쟁터로 걸어나가던 우리들은
적진의 기관총 세례에 초반부터 피투성이로 허물어져내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용기, 도전, 창의력, 끈기, 긍정적 성격 따위는 자기를 소개할 적절한 문구가 아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왔고 무슨 자격이 있으며 외국어는 얼마큼 하고 어떠한 사회생활을 해왔느냐가
적절한 '소개용' 주제인 것이며 하다못해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저는 긍정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습니다'는 식의 주장은
'저는 사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답니다'와 다를바 없는 안타까운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처음에 언급한 '내가 나에게 나에 대해 소개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내가 내 자신에게 난 참 긍정적인 녀석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세 명의 문성은 물론
양심이라는 심판관까지 불러내 확인해보아야 할 내용이며
네 명이서 한 목소리로 '그렇다'라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객관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혼자만의 결론이기 때문에
외부에 써먹으려면 배심원들의 공증, 즉 객관적 증거가 필요한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난, 주저리주저리 말은 많지만 공증받은 장점은 별로 없다.
회사 생활 1년 9개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는 한다.
너무 좋아하지만 결국 내 자신에게 득되는 것이 없다고 판단되는 컴퓨터 게임이나
프라모델 등을 인당수에 샤방 밀어 빠뜨리고 심지어 인터넷까지 정지시켜가며
그야말로 실제적으로 도움되는 그다지 재미없는 일들을 의무처럼 등에 지며 달려왔다.
직장에서는 사무실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자기계발 하나는 주간계획, 월간계획, 1년 계획, 3년 계획으로 세분화하여
철저히 매진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2006년도판 자기소개서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여전히 내 두 손엔 별 특별할 것이 없다.
여전히 정신적인 면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실적이 필요하다.
실물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있지만
결국은 내 자신을 믿게 하는 것 역시 주관보다는 객관에서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세 문성과의 회담과 2006년판 자기소개서 쓰기는
내게 의미가 있었다 생각하며,
반성과 검토의 의미로 1년 뒤 자기소개서는 무조건 다시 한 번 써보기로
마음 먹어 본다.
글쓴 동기를 막론하고 이런 개인적이고 재미없는 글을 나말고 또 누가 읽어보겠냐는 생각이 우선 들었지만,
그래서 참으로 성의없이 건들거리며 시작하였지만,
글쎄 어느새 난 작품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정도의 각오로 한줄한줄 깊은 생각을 짜내어 키보드 위에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더랬다.
내가 내 자신에게 내 자신을 소개하는 것.
그것은 수신자(문성)와 발신자(문성), 그리고 대상이 되는 주제(문성)의 세 객체가 일치하는데다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고개 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는 선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는 내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을 보는 내 자신을 현혹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의 주제가 되는 내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그렇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더랬다.
싱크대에서는 4~5일은 족히 쌓인듯한 지저분한 식기들이 쉰내를 풍길 차비를 하고 있고
며칠 동안 함부로 벗어던진 옷가지가 방바닥과 침대 위에 널부러져 신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매몰차게 외면한채 열과 성을 다해 써갈긴 나에 대한 이야기는
종내는 앞서 언급한 3자, 즉 세 명의 문성의 실로 오래간만의 회담이었던 셈이다.
자기소개라.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게임은 아직까지 뭔 뜻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수백번은 했고
학교든 모임이든 교회, 학원에서든 대중 앞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문성이어요'식의 소개도
무진장 했었지만 이런 거는 일단 제외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자기소개서 같은 것은 어릴 때 학교에서 몇 번 써봤고
군대 자대배치 받고서도 한 번 제출했었는데 이 역시 숙제 내지 의무로 대충 쓴 것이라
이 역시 신경쓰지 말기로 하자.
그렇다면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는 2003년에 삼성인턴을 지원하면서 쓴 것이 처음이 될 것이고
그 후 2004년 가을에 여섯번 정도 써댔었는데 실상 내용은 거진 다 비슷비슷했던 것 같다.
그 중 SONY에 낸 자기소개서는 영어로 써야했는데 아마 지금 보면 쪽팔려서 북북 잡아찢어버릴 정도의
엉터리 문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열심히 써댔던 일곱장의 자기소개서는
나의 중고고물컴퓨터 하드와 함께 일년 육개월전쯤에 싸그리 다 운명을 달리하셨다.
2003년도 그렇고 2004년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은
그 시절의 난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또한 감성적으로 보나 이성적으로 보나
가진 것도, 해놓은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참한 사실이다.
남들이 열심히 삶과 싸우고 씨름하고 얻어터지며 격전을 벌이고 있던 대학 2, 3학년 때
그래. 난 다 잘 되겠지. 뭐 별일 있겠냐라는 안일함 위에 넘실넘실 배영이나 해대고 있었단 말이다.
아니, 이왕 글 쓰는 거 솔직하게 말하자. 대학간판. 그거 믿고 있었다.
변명이겠지만 내가 대학 1학년 때, 나름 IMF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배도
취업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 1년 선배들이나, 내 친구들이나
심지어 교수님들까지도 우리 앞에는 밝은, 그리고 아주 쉽고 편한 그런 길이 기다리고 있을 줄로만 알고 있었다.
단지 여기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얘기 듣기로는 그 때만 하더라도 취직하는게 그리 어려운 시절은 아니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영어를 하든 못하든 웬만하면 어엿한 대기업 자리 하나씩은 꿰찰 수 있었고
기업에서도 사람이 모자라 닥치는대로 긁어서 채용했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고등학교 때 한시절 빤짝 공부를 열심히 했거나 수능에서 행운의 바가지성 안타를 쳐 진루한 후
대학 내내 그저그런 학점을 유지하며 편안한 포장도로를 정속도로 주행해온
나같은 젊은이들에게 사회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기는커녕 쌍칼을 들이댈 뿐이었다.
영리하고 뭔가 낌새를 눈치챈 몇몇 친구들은 3, 4학년 때부터
고시, 경영동아리, 컨설팅, 인턴, 어학연수 등으로 내공을 증진시키기 시작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 역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듯하고
나 역시 졸업을 코앞에 둔 4학년 2학기 때까지도 자기소개서에 적을 게
인턴경험 하나, 토익점수 하나 밖에 없을 정도로 빈털털이 청년에 불과했다.
변명하자면 거리도 있다. 딴에는 공대라 숙제, 정말 지긋지긋하게 많았고 시험도 쉴새없이 있었다.
유복하지 못한 학창시절이라 과외는 늘 달고 살아야했으며
컴퓨터 게임도 해야했고 소개팅, 미팅, 데이트, 밤새워 술마시기 등
학생 아니면 못할 일들도 '의무감'으로 다 커버해야 했던 바빴던 젊은 날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취업시즌이 다가와 자기소개서 양식을 받아 보았을 때
그 어디에도 소개팅 횟수를 묻고 컴퓨터 게임 수준을 묻는 란은 없었고
숙제가 얼마나 많이 했고 과외는 몇 개를 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내 손에 잡고 있는 능력과 가능성,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 사회였다.
결국 내 자기소개서는 많은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실물'을 보여주기보단 용기, 도전, 창의력, 끈기, 긍정적 등등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데 그쳤고
이러한 '실속'없는 자기소개서를 덜렁덜렁 흔들어대며 싱글싱글 전쟁터로 걸어나가던 우리들은
적진의 기관총 세례에 초반부터 피투성이로 허물어져내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용기, 도전, 창의력, 끈기, 긍정적 성격 따위는 자기를 소개할 적절한 문구가 아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왔고 무슨 자격이 있으며 외국어는 얼마큼 하고 어떠한 사회생활을 해왔느냐가
적절한 '소개용' 주제인 것이며 하다못해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저는 긍정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습니다'는 식의 주장은
'저는 사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답니다'와 다를바 없는 안타까운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처음에 언급한 '내가 나에게 나에 대해 소개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내가 내 자신에게 난 참 긍정적인 녀석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세 명의 문성은 물론
양심이라는 심판관까지 불러내 확인해보아야 할 내용이며
네 명이서 한 목소리로 '그렇다'라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객관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혼자만의 결론이기 때문에
외부에 써먹으려면 배심원들의 공증, 즉 객관적 증거가 필요한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난, 주저리주저리 말은 많지만 공증받은 장점은 별로 없다.
회사 생활 1년 9개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는 한다.
너무 좋아하지만 결국 내 자신에게 득되는 것이 없다고 판단되는 컴퓨터 게임이나
프라모델 등을 인당수에 샤방 밀어 빠뜨리고 심지어 인터넷까지 정지시켜가며
그야말로 실제적으로 도움되는 그다지 재미없는 일들을 의무처럼 등에 지며 달려왔다.
직장에서는 사무실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자기계발 하나는 주간계획, 월간계획, 1년 계획, 3년 계획으로 세분화하여
철저히 매진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2006년도판 자기소개서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여전히 내 두 손엔 별 특별할 것이 없다.
여전히 정신적인 면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실적이 필요하다.
실물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있지만
결국은 내 자신을 믿게 하는 것 역시 주관보다는 객관에서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세 문성과의 회담과 2006년판 자기소개서 쓰기는
내게 의미가 있었다 생각하며,
반성과 검토의 의미로 1년 뒤 자기소개서는 무조건 다시 한 번 써보기로
마음 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