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즐겨보는 WWE에 자주 등장하는 마크 헨리라는 아저씨다.
띠룩띠룩 살만 찐 것처럼 보이는데, 재밌게도 별명은 ‘World’s Strongest Man”, 즉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다.
물론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힘세'지는 않다.
저 별명도 어느 힘겨루기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 하나 믿고 내세우는 거고 중요한 경기때면 어김없이 얻어터진 후 링 위에 벌러덩 누워 헉헉거리는 것이 세상에서 한 사십이만번째 힘센 사나이쯤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꿋꿋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을 내세우는 뻔뻔함은
재수없기보다는 얼추 대견스럽기까지 하니 과히 밉지만은 않은 아저씨다.
그러고보면 미국은 온통 월드, 월드다.
지네가 세상을 좌우한다는 자부심에 그러는 것인지 중국애들처럼 뻥이 심해서 그런 것인지 야구의 월드시리즈건 월드 레스링 엔터테인먼트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건 여기저기에 잘도 ‘세상’을 써붙이고 다닌다.
CNN 뉴스나 외국 기업가들이 써 놓은 책을 접하면 한층 더 난리,
‘전 세상이 슬픔을 같이 했습니다!’ – 하나도 슬프지 않더라.
‘세상을 감동시킨 역사적 M&A였다’ – 자기네 회사들 거래하는데 왜 세상이 감동하니?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참으로 차분하시고 소심하시다.
세계최고라 부를 만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들 얌전빼고 예의 차리느라
겸손함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하는 모습들이 펄럭펄럭 온 한반도를 가득 메운다.
동계올림픽을 재패한 안현수 정도 되면 ‘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다’라고 일갈해도 될 것이고 챔피언을 어찌됐듯 무너뜨린 최홍만은 ‘난 일대일로 싸우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다’라 부르짖어도 이견없고 열린우리당쯤 되면 ‘우린 세상에서 가장 인기없는 여당이다’라 울며 흐느껴도 되련만 다들 그저 겸손하게 몸을 사릴 뿐이다.
‘그저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여기에 이른거죠’. 웃기는 소리다. 무엇보다 본인들이 알거다.
국민들의 성원보다 자신들이 노력이 몇 백배 몇 천배 더 큰 요인이었다는 것을.
하긴 우리 나라 문화 자체가 뭐랄까, 올림픽 사격시합 같다고나 할까.
누가 무대에 나와서 나불나불 거리면 사로(射路)에 일렬로 서 있는 여론대표 선수들의 ‘재수없다! 쏴랏’이라는 신호아래 일제사격을 가해 온몸이 죽부인이 될 때까지 갈겨댄다.
대표적 주자가 이천수.
스페인 무대에 진출했을 때 ‘베컴’을 따라 잡겠다 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얻은 별명이 ‘혀컴’, 혓바닥만 베컴이라는 몹시 악의적인 욕이다. 이만하면 집중사격도 아주 전문적이고 잔인한 수준아닌가. 이런 소리 듣고도 끝끝내 재기하여 월드컵에서 골까지 넣으니 참 장한 선수다.
그래. 겸손한 것 좋다 이거야. 잘난체 하는거 사실 별로 보기 안 좋기도 하고. 그런데 ‘베컴’을 따라잡겠다는 목표 하나 말한 것만으로도 다다다 따발총 갈겨버려 모래바닥에 피투성이로 엎어지는 것을 봐야 성깔이 풀리는 이 놈의 문화는 결국 사람들을 튀지 않게,그저 수수하게만 지내도록 강제하는 무언의 법규임에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멋진 꿈과 포부를 시원스럽게 밝히는 사람이 없고 ‘세상에서 가장’을 노래하는 사람도 없다. 다들 평균에 귀결되고 범상함의 인력에 끌려갈 뿐이다. 가뜩이나 획일적인 교육제도와 다양성이 말살된 문화에 가히 튈만한 환경적/유전적 요인을 수여받지 못한 인생들인데 서로서로 다음 사냥감을 찾듯 노려보고만 있으니 이거 이 나라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고.
그래서,
무척이나 억지스럽지만
내 스스로가 먼저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내 이름 석자, 아니 두자 앞에 붙여놓기로 했다.
나 역시 아까 말한 도열한 사수들처럼 남의 커다란 포부를 흘겨보고 자신의 초라한 라이프는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해왔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내가 꿈꾸던 꼬락서니가 아니다. 어이없다는 소리 들은지언정 큰 포부를 가지고 주어진 인생을 감사히 구가하는게, 그게 문성식 꼬락서니가 맞다. 남들보고 뭐랄게 아니라 먼저 나부터 발전과 변화의 노래를 마이크 들고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내 입으로 말하기도 참 우습지만
‘세상에서 가장’의 내가 되기로 했다.
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봉산탈춤을 춘다 하여도 총 갈겨 댈 사람도 없을터, 아직까지 풋풋한 청세포들이 오장육부에 가득하고 도전과 패기의 콜레스테롤이 모세혈관 줄기마다 가득히 들어찬 이 이십대에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불씨를 우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깊숙히 하나 박아놓는다면 한층 더 ‘젊게’,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나.
그래서
무척이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지만
‘세상에서 가장’에 어울리는 무언가가 없는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생각1]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문성 – 마크헨리부터 이기고 생각하자
생각2]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사나이 문성 – 글 쓰면서도 내가 다 민망하구만
생각3] 세상에서 가장 돈많은 사나이 문성 – 별로 도전해고 싶지는 않은 과제다
생각4] 세상에서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나이 문성 – 너무너무 싫다.
생각5] 생각에서 가장 말많은 사나이 문성 – 노홍철을 이길 수 있을까
생각6]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나이 문성 - ………..
그래, 여섯번째 것 정도는 해볼만하지 않을까.
전국열정대회, 월드열정컵 같은게 없으니 객관적으로 비교당할 일도 없으니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타고난 재능이나 환경적 요인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the most energetic and passionate man in the world”
-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인 사람 -
이만하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로 삼기에 제법 괜찮지 않겠느냐구.
그래도
이렇게 번드르르하게 말만 하고 실천이 없다면 사람들이 '혀성' 혹은 '문혀'라고 불러도 할말이 없을터, 실천을 위해 우선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막는 방해요인들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바로 '피곤하다'와 쉬고 싶다' 혹은 이 두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일체의 부정적 말들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10년 기한을 두고 2016년 6월까지 이러한 말을 입에서 완전히 들어내버리려고 한다. 내 스물 여덟개 치아 중 이런 말을 들먹거리는 녀석이 있다면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한다.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이 인생의 방향을 좌우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바, 피곤하다와 쉬고 싶다라는 이유로 자행되는 강력한 합리화와 변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정과 에너지를 갖추는 선결조건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한숨 자고 싶다거나 티비 좀 보며 놀고 싶다는 말을 ‘나 지금 피곤하다’로 코팅하지 않을 것이며 회식에 가고 싶지 않다. 오늘은 빨리 집에 가서 놀고 싶다라는 말을 ‘나 지금 쉬고 싶다’로 얼버무리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내 이름 앞에 구구절절한 변명의 수식을 붙여 현실과 어려움과 문제와 이슈들에서 피해가려는 자신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 앞의 수식은 '세상에서 가장'으로 족할뿐이다.
늘 힘이 넘칠 수는 없겠지만 넘치는 척이라도 할 것이고 그렇게 말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면 그런 ‘척’’이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어느새 내 몸과 마음을 좌우할 것이라 믿는다. 살랑살랑 헛소리에 불과했던 나의 '말'이 어느덧 내 삶의 윤곽을 붓칠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뚱땡이 마크 헨리 아저씨도 스포트라이트 받으려는 컨셉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고 그 못지 않게 다이어트 및 여러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인다면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아저씨, 우리 힘내요. 예?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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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혁
2006.06.29 14:30
나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이 글을 읽은 사람' 일세~~ -
문★성
2006.06.29 19:49
시험 내일까지 아니냐-_- 잘 치고 있는거냐.
밖에 나와있느라 전화도 못했네. 마무리 잘하시게.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공무원이 코 앞에 있구랴. -
이치훈
2006.07.03 16:08
세상에서가장에너지가넘치고열정적인사람문성...
...넌..세상에서 가장 이름이 길다..줄여도 세가에넘열사문성... -
문★성
2006.07.04 19:32
그나마 이름이 두 글자라서 저정도라도 되지 않나 싶은디.
암튼 세가에넘여사문성 괜찮네 고마우이 흠흠-_-a -
한나
2006.07.27 05:55
와 재밌다..ㅋㅋ 오랫만에 오빠 글 읽으니까 좋다~ㅋㅋ -
문★성
2006.07.27 21:20
응 고마워고마워 ^-^;; 인터넷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