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많이 춥네.
그래 지금은 창가에 살그머니 들어오는 햇살보다는
바닥에 깔려 다가오는 냉기에 몸을 떨며 잠을 깨게 되는 계절,
으스스한 기분마저 자연스러워지는 시기인가봐.
잠에서 깨면 말야. 컴컴한 방의 어둠을 두 손으로 짚고 일어서서
거울 앞에 엉망이 된 머리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친 후
주섬주섬 옷을 갖춰입고는 나의 사랑하는 자전거와 함께 길을 나서지.
그럼 저어기 길 건너편에서 손살같이 달려와 나를 확 껴안으며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의미로 자리매김하는
삶...
너를 맞닥뜨리게 돼.
그 때부터 우리는 앞치락뒤치락 힘겨운 씨름을 벌이고
파김치가 된 몸을 잠자리에 뉘일 때쯤 되어서야
너는 비로서 하루의 안녕을 고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뛰쳐나가버려.
오늘도 역시 그럴테지?
똑같은 시작이고 똑같은 끝이야.
가끔있는 특별함도 특별하지 않은 똑같음이 되어버리는 요즘에 너는
추운 아침에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기에 앞서
반지하 방에서 한 석달은 머물러있던 답답한 기류 같애.
밋밋하고. 그저 피곤할 뿐이야.
좀 더 강렬한 감동으로 내게 다가올 수는 없는거니?
좀 더 화끈한 뜨거움으로 나를 열받게 할 수는 없는거냐구.
안녕. 성
나두 추워. 요즘은.
새벽에 너네 집앞에서 손을 호호 불며 네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게
슬슬 힘들어지고 있어. 나랑 같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친구들도 똑같애.
그래도, 뭐. 이게 우리 삶의 삶이라는 것이니까.
그런데 너 또 울적해졌구나. 이걸로 올해들어서 벌써 59번째인가.
그래 그 기분 이해할만도 해. 원래 내가 좀 무뚝뚝하고 답답한 스타일이잖아.
그치만 말야. 다른 사람들도 다들 마찬가지라고.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가끔 신이 나서 방방 뛸 정도로 삶을 즐기는 사람도 있긴 한데
그것도 한철이야. 오래가지 못해.
50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
그 사람이 60의 행복을 가지게 되면, 예를 들면 사랑고백에 성공했다거나, 승진을 했다거나 하면
웃음꽃이 환하게 핀 얼굴과 함께 난 행복해라는 말이 즐거운 필체로 온몸에 새겨져버려.
그래. 이게 바로 삶이야! 그러면서 우리를 자기 맘대로 정의하기도 하고
아침마다 자기가 먼저 달려와서 우리를 끌어안으며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구.
근데 한달, 아니 일주일만 있으면 더이상 60의 행복은 그 사람에게는 행복이 아냐. 당연한게 되어버리거든.
그리고선 70을 바래. 80을 바라고. 더 이상의 기쁨은 없어. 다 날라가버리지, 향기도 없이.
그러면서 다시 삶은 재미없다느니 나의 삶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나느니 하는 식으로
괜히 우리를 걸고 넘어져 욕하고 그러잖아. 하지만 말야 사실 우린 죄 없단 말야.
지금 너두 그래. 잘 생각해보면 넌, 충분히 행복한 거라구.
그래. 삶.
네 말이 맞어. 다들 그렇게 사는건지도 몰라. 훗.
다만 내가 느끼고 싶은 것은 어제보다 다른 하루라고.
굳이 50에서 60으로, 60에서 70으로 점프할 필요는 없어.
그저 51, 52, 53... 이런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걸로도 행복을 느낄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낄 것 같고.
하지만 너는 그러한 한 걸음의 움직임마저 허용하지 않잖아.
나를 끌어줄 수는 없는거야? 내 손을 잡고 팍팍 이끌어주면 안 되는 거냐구.
하다못해 뒤에서 밀어줘도 될 것 같아. 그렇지만 넌 나를 꽉 잡고 놓아주지를 않아.
피곤에 찌든 몸으로 깨어나 다시 피곤에 찌들 때까지 살다가 잠자리에 들면
나는 어제의 그 자리에 그냥 머물고 있을 뿐이야. 아니, 오히려 더 뒷걸음친 날
볼 수 있던 아침도 적지않아.
궁금해난.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나은건지
한 두달 전에 비하면 어떨지
회사에 처음 출근한 1월 3일, 그 복잡한 지하철에서 그보다 더 복잡한 기분으로
너와 함께 흔들리던 나와 비교하면 어떤지.
진보하기는 커녕, 나아지기는 커녕
혹은 끝없는 후퇴와 쇠락의 나락에 안락하고 희희낙락한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단 말야.
니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별반 나아지지 않았어. 비슷해. 어제와, 한달전과, 심지어 1월 3일이랑 비교해서도.
그래 나두 알어. 너 디카도 샀고 핸폰도 샀어. 자전거도 이쁘고.
저축도 시작했고 옷도 조금은 고급스러워진 것 같애. 돈 버니까 먹는 것도 제법 비싼 거 먹고.
안주가 김치찌개, 알탕에서 회로 바뀐 것은 진짜 작년 생각나게 한다니까.
그렇지만 그건 진보가 아냐. 돈을 벌고 쓰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애초부터
달고나오는 기본적인 삶의 고리일뿐. 그게 사람의 성장을 말해주지는 않아.
우리들, 삶의 견지에서 보면 그건 나아가는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그냥 돌고 있는 것일 뿐이야. 빙글빙글. 빙글빙글.
그게 너를 포함한 사람들의 24시간이고, 7일이고, 52주야.
계속 벌고 쓰고를 반복할 뿐.
많이 버는 사람이나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쓰고,
적게 버는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써.
큰원을 그리면서 도는 것이나 작은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나 결국 맴도는 건 매한가지.
안타까운 건,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원을 그리기 위해 살고 있다는 거야.
피곤해하면서 돈을 벌고, 쉬면서 돈을 쓰고, 다시 피곤해하면서 돈을 벌지.
그렇게 모인 돈으로 이것저것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면서
어때? 이만하면 좀 낫지 않어? 라 하지만 스스로를 변명하지만
사실 다들 알고 있어. 이런 식의 업그레이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자랑할만하게 아니라고.
돈벌기 - 돈쓰기의 지루한 돌림노래에서 벗어나야해.
저 고리 하나로 표현되는 삶이란 너무 처량하다구. 그건 나에 대한 모욕이고, 직무불이행이야.
뭔가 더욱 스페셜한게 인생에는 있어야되고
그러함으로써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돼
돈을 벌며 녹초가 된 정신과 육체를 돈을 쓰며 위로하지 말아. 그건 아니라구.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하루가 너무 짧아. 몸은 피곤하고 정신도 그 못지 않아.
나를 꽉 붙잡고 늘어지는 매일 똑같은 너에게서
벗어나는게 너무 쉽지 않단 말야.
그렇지 않아.
네 인생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야.
난 너를 잡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너를 끌어당기지도 않아.
우리들 삶은.
애초부터 손이란 것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거든.
난 그저 네 앞에 서 있을 뿐이고 너랑 같이 걸을 따름이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네 자신이지.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쳐봐.
실패하고 망치더라도 그 와중에 예전의 너와는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테니까.
그게 바로 나, 삶이 오늘 네게 해 줄수 있는 마지막 말.
밤이 됐거든. 이제 자야할 시간이야.
내일도 네겐 치열한 삶이 펼쳐지겠지? 겁내지마.
그리고 잊지마. 뻔한 원, 그 고리에서 벗어나라구.
그럼 분명 넌 더 나아갈 수 있고 더 멋져질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어.
자아. 내일 아침. 늘 만나던 거기서 만나는거 알지?
잘자려무나. 굿나잇.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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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혁
2005.11.11 00:36
버럭!! 요즘 회만 먹는다고? --; 빨리 와서 쏴라~ -
문★성
2005.11.13 07:54
회만 이라니! 회도 먹는다 이거지 뭐-_-a 쏘는거야 언제든지! ^-^ -
인영
2005.11.16 22:07
오빠의 난설은...
늘 맘에 들지만...
이번글은 특히나 맘에 드네요^-^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로 ㅋ -
문★성
2005.11.17 23:49
매번 칭찬해주니 너무 고마운걸? ^-^; -
유주
2005.11.21 22:27
나두..읽으면서 내 싸이에 올리구 싶다...했는데..ㅋ
역시...
생각하며 사는 성...멋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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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
2005.11.22 12:07
생각하는 것처럼이라도 보이니 다행-_-;; 사실 아시다시피 대책없이 살다가 이런거 쓸 때만 머리 굴리잖아요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