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다운 시절의 이동국
이동국.
스무살 어린 나이에 한국축구를 먹여살릴 기대주로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으며 화려하게 빛나다가
해외진출 실패와 지나친 혹사로 인한 슬럼프로
결국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선수. 1979년생. 나보다 딱 열살 많다.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아깝게 제외된 후
온 국민이 붉은 물결을 이루며 떠들썩하던 2002년 6월
그는 한국팀의 경기는 하나도 보지 않고 술만 먹으며 폐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겠지.
그리고 2년 후.
황선홍이 은퇴하고 최용수와 김도훈가 고령으로 국가대표와 인연을 끊자 다시 기회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컴백은 서태지나 김대중씨의 컴백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얼마나 쓸 선수가 없으면 쟤를 다시 집어넣을까?'하는 한숨만이 이리저리 나돌았을뿐.
6년전과는 달리 이동국에게 한국축구의 미래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예전의 귀여움을 잃어버린 외모와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꺅꺅하며 성원을 보내주는 소녀팬들도 거진 사라져있었다.
그 후 경기당 한 골 정도는 꼭 넣어주고는 있지만 팬들의 반응은 아직
냉담하기만 하다. 한결같이 그의 '문제점'만을 지적하며
대안으로는 '다른 선수로 대체'만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비판은 사실 어느 정도 합당하다.
믿음직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도 마찬가지. 한 골 넣었으나 날려먹은게 무려 열 두번이다.
이러다간 무브먼트의 화신 트리플 J 조제진이나
나이만 청소년 박주영, 이름부터 애국적인 정조국 등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06년 월드컵이 오면 또 술 먹으며 폐인생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제 기어코 한 골 넣긴 했다. 장하다!
아쉬운 노릇이다.
얼마 전 다음의 인터뷰를 읽은 다음부터는
전과는 다른 애절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지만
역시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 인터뷰는 대충 이런식이었던가.
"내가 최고의 선수가 아닌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연습량만큼은 최고라 자신할 수 있다"
감동먹었다.
이게 뻥이 아니라면 정말 대단한거다.
세상에, '난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된단 말인가.
적어도 나를 포함한 내 주위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하긴 얼굴에 살 빠진거 보라.
웬만큼 해선 스무살 중반 돼서 얼굴라인 저렇게 변하기 힘들거다.
게다가 저 허벅지, 예전보다 더 굵어졌다. 25인치는 족히 될 것 같다.

어제 경기장면. 표정이 웃겨주고 있다.
노력하고 있는것이다.
게으르니 헛물만 들이켰느니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되더니 정신 못차리니
하는 소리가 들리든 말든 스스로 딱 부러지게 자신할 수 있을만큼
열심히 땀흘려 온 것이다.
그 노력의 댓가. 반드시 돌려받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분명 그리 극적인 것만은 아니기에
결실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사실 더 클 것이고
선배들에게 압박받고 후배들에게 쫓기고 있는 지금의 그의 위치는
사실 매우 불안정할 뿐이지만
그래도,
다음 월드컵 때까지 어떻게든 꼭 살아남아 멋진 골 하나 터트림으로써
존경한다는 선배 황선홍처럼 어두웠던 과거를 완벽히 부정하는
드라마 하나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
그게 바로 모든 사람들이 스포츠라는 것으로부터
기대하는 희망이자 꿈 아니겠는가.

98년, 잘 나가던 시절의 이동국과 고종수.
천재라 불리우던 고종수도 심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안타까운일.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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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구
2004.11.1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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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
2004.11.19 10:14
노다메 칸타빌레 자네두 읽냐-_- 암튼
정확한 분석과 면밀한 해결책 모색에 고개 무수히 끄덕이며 공감했네. 같은 주제라도 역시 보는 눈이 다르구만 히힛^-^
포항사람들은 되려 욕 많이하던데 그만큼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 사실 자네가 처음에 말한 포항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빨리 이루어졌기 때문에 슬럼프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하네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그는 계속 뜨거운 감자였고 금강석은 아니었고 쌍권총같은 행운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네(최순호 감독은 쩝-_-) 나로선 조금 더 기다릴 마음은 충분히 있네만... 과연 필드가 지금처럼 그를 기다려줄지는 의문일세. 그래서 안타까운거고. 흑.
그만큼 그의 청대때 포쓰는 장난아니었다. 프로초기까지는 최고였다.
난 솔직히 이동국이 게을렀던 시절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왔다. 포항에서는 이미 "인상 잘쓰고 욕 잘하고 말 별로 없고 여자한테 인기는 많고 솩아지(제로보드 금지단어 좀 풀어라)도 좀 없지만 축구는 열심히하는.. 그래서 별로 뭐라고 할 수는 없는"놈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교 축구대회에서 곧잘 고종수와 만나게 되어 그때부터 친해지고, 활달한 전라도 가이 고종수에게 나이어린 어리버리 이동국은 한 마디도 못건지도 늘 질질 끌려다녔나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같이 밥먹고 나서 "동국아 잘먹었다잉" 에 무너진 적이 여러번이라고 한다. 그 허벅지 카리스마가 고등학교 후배들 앞에서 완전 영일만 갈매기똥되는..)
즉, 난 애초부터 이동국이 그렇게 "아이돌 스타성 축구선수"라고는 생각 안했다. 우리 고등학교 친구들도 그렇고. (장대일-_- 과연 연예인으로 성공할 얼굴이긴 한가? -_-)
차두리도 그렇고 이동국도 그렇고, 냄비근성이 아쉬운 선수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좋은 조련사가 있었다면, 2004 삼성라이온즈의 권권 - 더블권'S 영건듀오를 완성시킨 선동열과 같은 코치가 곁이 있고.. 또 언론과 축협의 잦은 질타와 번번히 교육제도 비슷한 속도로 갈팡질팡하는 대표팀 구성 및 전략 전술 기조변화에 의해 바보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좀 더 훌륭한 국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스트라이커는 태어난다는 말이 있긴 하다. 임치훈이랑 이야기하는 "니 브라더스" (반니 루니 앙니 -_-)들을 보면 뭐 그런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지만.. 애초에 금강석이 없다면 진주랑 루비라도 갈고 닦아야지 않을까 싶다.
오만 게시판에서 이동국은 몇년 째 뜨거운 감자다. 참 저러기도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아직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 주고 있을 정도다.
이동국 소나타 G장조. 안단테 칸타빌레. 조금 천천히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