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줄거리는 다음의 글을 통해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안 보셔도 전히 상관없습니다. 내용 안 이어집니다-_-
제1부 내 청춘의 브루탈러티
제2부 오대수가 과산화수소에 빠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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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째
삼일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안에 죽은듯이 누워있은 것이
오늘로써 삼일째.
달력이나 시계는 물론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삼일이라는 계산은
아무런 보증없는 불확실한 것일테지만
그러나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마음 편할 듯했다.
지금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알 수 없는 암흑에 휩싸인채 어딘가에 누워있다는 것과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다는 것 뿐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봐도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삼일째라는 근거없는 앎 하나라도
나에게는 물에 빠졌을 때 손에 잡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처럼
불잡고 늘어지고 싶은 구원의 희망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아무 것도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될까.
TV 뉴스나 정보프로그램, 인터넷 사이트 등지에서
하찮게 보아넘긴 이야기를 통해 그 '기간'이란 것을 접한바 있지만
지금와서 그것이 정확하게 기억날리 없다.
한달쯤 될까? 아냐 너무 길어. 한달 굶을 순 있겠지만 물이 없다면
보름정도도 힘들거야. 그럼 일주일?
그래, 한 일주일은 살 수 있으리라.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럴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난 아직 더 많은 날을 더 살 수 있다.
이 방에 와서 지금까지 흐른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삼일째라는 멋대로 지어낸 사실은 내겐 희망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절대 사일째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훗. 쓸데없는 생각들이다.
이 자리에서만도 벌써 몇 번은 내 머릿속을 오간 지겨운 생각들.
그러나 이렇게라도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후우~~
답답한 마음에 크게 한숨을 내쉬어본다.
내뿜어진 숨이 다시 내 얼굴 위에 포근히 내려앉는다.
낯익은 느낌. 그러고보니 제법 오랜 시간을 여기 머물러 있었던 것같다.
어둡지만 공간감만큼은 확실히 느껴지는 이 작지 않은 방이
내 자신의 느낌을 가득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억지스레 코를 비집고 들어오는 내음도
몸에 미지근하게 달라붙는 공기의 체온도
낯설지 않았다.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것이었다.
이 친근한 공기가 언제 나의 목을 짓누를지 알 수 없으나
그 때까지는, 이 정도의 낯익음이라도
내겐 너무 소중한 무언가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낯익음.
그래. 갑자기 낯익음이라는 단어가 사무치게 다가왔다.
공기를 내 편으로 삼고 싶을 만큼 내겐 낯익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내 손, 내 발, 내 얼굴 마저 볼 수 없지 않은가.
내 몸뚱아리들은 다들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일까.
고개 조차 움직일 수 없이 누워있는 몸이다보니
그것마저 확인할 길 없다. 끔찍한 현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젠장.
한 줄 슥 흐른 눈물이 평행봉 위에 서 있듯 위태위태했던 내 심정을
완전히 무너뜨려놓았다.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난 엉엉 울어댔다.
뺨을 통해 턱으로 흘러내려야 마땅할 눈물들이
눈끝에서 귀쪽으로 바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는 것조차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음이
더욱 더 서럽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난 마구 울었다.
3-2. 개천
그 때.
갑자기 주위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구구궁 하는 소음들과 먼지들이
무너질듯이 내 위에 쏟아져내려왔다.
그러다가 천장 한 구석에서 눈부신 빛이 비춰오기 새어들어오기 시작했고
난 인간공학 시간에 배운 명반응인지 암반응인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신체반응으로 인해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엄청난 진동과 소음이 나로 하여금 떨게하는 가운데
주먹만한 크기로 들어오던 빛들이 어느새 호수만한 크기로
확대되어 내게 다가오는 것을 꼭 감은 눈 너머로 느낄 수 있었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한 30초쯤 지났을까.
어느새 진동은 멈췄고 주위는 다시 고요에 휩싸였다.
난 조용히 눈을 떴다.
눈 앞이 훤했다. 아직 남아있는 눈부심에 찡그릴 수밖에 없었지만
시선이 닿는 곳에는 분명히, 파란 하늘이 멋드러지게 펼쳐져 있었다.
천장이 아예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놀라셨죠?"
낯선 남자의 쉰듯한 목소리가 좌측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고개를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죄송하네요. 몸을 풀어드려야하는데.. 깜빡했네요.."
차가운 손이 내 왼쪽 팔에 닿았다.
"...쨍!"
그가 외침과 동시에
딱딱히 굳어있던 내 몸이 와르르 눅아내리듯 풀어져버렸다.
자유를 찾게 된 것이다.
난 얼른 몸을 일으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내가 나를 향해 식 웃으며 말했다.
"얼음쨍 오랜만에 해보네요. 히히"
난 소리를 빽 질러댔다. "난 '얼음'한 적도 없는데!!!"
"했습지요" 그가 바로 맞받아쳤다.
갑자기 말문이 콱 막혀버린 나는 이제서야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190에 가까운 비정상적으로 훤칠한 키에
뼈밖에 없다고 하면 정답이란 소리가 나올정도로 마른 체형,
얼굴 역시 뼈와 살이 바짝 달라붙어있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상당히 무섭고 날카로운 인상이랄까.
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런 그가 머리는 호일파마 비스무레한걸 하고 있었고 .
가슴이 깊이 파인 헐렁한 하늘색 브이넥티와 역시 헐렁한 밝은색의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힙합스타일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대단히 어색한 모습.
그러나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초면에 분명히 실례되는 일일거다.
"언제,,.요?"
"기억안나실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하셨다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움직일 수 없으셨던 거라지요"
지금까지 꼼짝 못했던것이 얼음쨍때문? 허허.
그래. 했을지 모른다. 근데 중요한 것은 얼음쨍이 아니다.
얼음쨍이 맞니 얼음땡이 표준어니 하는 것도 지금 파고들어갈 핵심은 아니다.
난 물어볼게 많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안 풀어준거죠? 아니, 대체 제가 여기 온지 며칠이나 된 겁니까.
당신은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말끝마다 '요'자를 붙이는 이 이상한 사내는 매서운 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부드럽게 말을 풀어나갔다.
"허. 거참 다다다 말 많으시네요. 히히.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만요.
자. 뭐부터 말씀드릴까요. 일단 제 이름부터 말씀드리자면, 전 '사면발이'라고 하지요.
그 안 씻는 남자들 한테 기생하는 지저분한 병 생각하시지 말구요.
그냥 이름이 그렇다는 거라지요. 저는 어느 조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만
이건 이따가 얘기해도 될 것 같네요.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요, 이 모든 사건은 당신이 쓸데없는 싸움에 끼어들었기 때문에
말미암은 거라지요. 그 두 사람의 노여움을 사다니요. 무척이나 위험했지요.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얼음'을 외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하더라더라지요"
그래. 기억이 났다. 난 과산화수소녀와 오대수여사의 싸움을 말리는 중이었다.
이 사내가 말하는 '그들'은 그 두 아줌마를 말하는 것에 틀림없으리라.
그럼 그들이 어느샌가 날 공격했다는 것인가? 단지 싸움을 막으려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아줌마들이 날 위기로 몰아가는 순간,
내가 무심결에 '얼음'을 외쳤고
두 아주머니들은 규칙상 차마 날 치지는 못하고 아쉬움을 감추며
돌아서게 되었고 그 때 굳어있던 날 이 남자가 구해주었단 말인가?
"예 바로 그것이죠. 아주 똑똑하시네요" 사면발이가 갑자기 불쑥 끼어들었다.
"... 아직 암 말도 안 했는데.."
"... 아... 뭐.. 어쨌든 뭐.. 말했다고 치자고요... 벌써 이 글 분량이 꽤 되거든요.
보통 이런류의 글에는 주인공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핏발을 세우거나
계속 질문을 한다거나 하는 과정이 추가되어 있는데요, 여기서도 굳이 그런 진부한
설정을 따를 필욘 없잖겠어요? 그냥 팍팍 넘어가자고요.
부연설명을 더 해드리리자면요. 당신께서 개입한 싸움의 두 주인공은
일명 아테네와 아프로디테라 불리는 우리 세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거물들이죠.
아테네와 아프로디테는 두 분의 별명이구요. 한 분은 워낙 총명하시기 때문에
지의 여신이란 뜻에서 아테네란 이름으로 불리고, 한 명은 보셨다시피
너무도 아름다우시기 때문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 불리우는 것이죠.
두 분다 아름다우신지라 누가 누군지 좀 헷갈리실 것 같은데
아들 큐피트를 데리고 있던 쪽이 아프로디테라 보시면 맞을 거라지요. 히히.
두 분은 워낙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가끔 그렇게 싸운다지요."
그 무지막지한 아줌마들이 여신이니 뭐니 하는 부분에서 '잠깐만요'하며
끊어먹는 것이 이런 류의 글에서 주인공들이 해야하는 마땅한 수순이겠지만,
어이가 없어도 한참이나 없던 나는 그냥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들보다 서열이 낮아도 한참이나 낮은 저로선 당신이 당하는 걸보고도 어쩌지 못해
그냥 구경만 할 뿐이었지요. 이점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나 저로선 어쩔 수 없었구요.
하여간 아프로디테가 당신을 버쩍 들어 아프로 바텀을 먹이고 아테네가 당신의
두 다리를 붙잡고 필살기 월 오브 아테네를 먹이는 순간에 당신의 입에서 얼음이란 말이
터져나왔어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지요.
게다가 마침 그때 동네 슈퍼마켓 주인아저씨가 추석특집으로 배추다섯포기를
단돈 3천원에 한정판매할거라고 메가폰들고 떠드시는 걸 듣고는,
두분다 그곳으로 번개처럼 뛰어가신거라지요. 역시 아무리 아테네니 아프로디테니 해도
아줌마는 아줌마인 모양입지요. 히히"
배추다섯포기에 끝날 싸움에 괜히 끼어든 내 자신도 한심스러웠지만
그 큰 덩치들에게 당하고 있었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아까 말라붙은 눈물이 다시 흐를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분이 동네 아줌마들과 경합을 펼치며 배추를 쟁탈하고 있는 사이에
제가 얼른 당신을 업어 이곳으로 모신거라지요.
아까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냐고 물으셨지요? 한 세시간 되었을거라지요. 히히.
좀 빨리 꺼내드려야 하는데 그만 깜빡하고 있었지 뭡니까요.
그나마 우시는 소리 듣고 겨우 기억해냈내요. 근데 다 큰 남자가 그게 뭔 추탭니까요.
울음소리 하나 우렁차더군요. 히히 "
세시간이란다.. 아까 절망 속에서 읊조린 삼일째 이론은 이제 대단히 쪽팔리는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아까 운 거 하나만큼은 잘 한 일인듯 싶다.
아니면 여기서 아마 잊혀진 존재로 비쩍 말라죽었으리라.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그럼 저를 이곳에 데려다놓은 이유는 뭐죠?
그냥 거기서 쨍하고 풀어줬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게 본론이라죠. 젤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이것은 진짜 비밀인데요. 저 사면발이와 제 동생 라면발이는
후코오카 님의 휘하에 있으며 그분을 도와 이 조직을 뒤집을 계획을 품고 있다지요.
그러나 철처한 서열제도로 구축된 이 조직에서 상부에 의해 완전히 파악되어 있는
저희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새로운 인재,
뉴페이스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라지요!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인 거라지요!"
요건 아까 미의 여신, 지의 여신 이상으로 어이없었기에 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이봐요. 당신네들이 어째서 조직을 뒤집고자 하는지는 사실 내 알바가 아닙니다만은,
대체 왜 나를 끌어들이는 겁니까. 난 아까 그 아줌마 두명 하나 감당 못해내는
그야말로 '일반인' 아닙니까. 저는 아무 상관도 없거니와 아무 힘도 없다구요"
"아니라지요.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용기와 의지라지요.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서 방관하고 모른체하고 있을 때
달려든 그 용기와 포기않고 힘으로라도 그들을 제압하려했던 의지.
그것이면 충분하다지요.
그리고 힘은.. 이미 저희가 당신에게 드렸다지요.
당신은 그 힘을 쓰기만 하면 되는거라지요"
이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힘이라뇨? 어디에 제가 힘을 받았다는 겁니까?"
"히히... 당신의 오른손을 한 번 살펴보라지요"
그래. 난 이 사람과의 얘기에 열중하느라 내 몸 하나 살펴보지 않고 있었다.
급히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붕대가 팔꿈치부터 손끝까지 칭칭 감겨져 있었다.
"이거 풀면 되는 겁니까?"
"물론입지요"
난 서둘러 붕대를 풀어헤쳤다. 언뜻 하얀 금속빛이 붕대 사이로 비춰지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내 손은 더 빨라졌다.
대체 내 몸에 뭔 짓을 했단 말인가!!
이윽고 드러난 나의 오른 손.
그것은 팔꿈치부터 손목부위까지는 흰색의 금속으로,
손이 있던 자리에는 빨간색 플라스틱이 대체되어 있는
너무도 기괴한 형상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기분이었다.
아니다다를까 흰색의 금속 가운데는
빨간색 한글로 평소에 많이 보았던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것은
.....
.....
.....
에 프 킬 라
였다.
내 손이..
내 오른 손이...
에프킬라로 바껴있었던 것이다.
'어디든 쫓아가 잡는다. 파리.모기 살충제'라는 문구 역시 빠짐없이 박혀있었다.
사면발이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축하합니다요. 최첨단 과학으로 당신은 새로 태어났고
이제는 우리의 새로운 희망이 되셨다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지요. 에프킬라맨!"
어느덧 그의 뒷편에 모여있는 이십여명의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뒤를 이어 외쳤다.
"반갑습니다 애 프 킬 라 맨!!!!!"
그 중에 몇은 연구의 성공에 감명받은듯 눈물을 흘렸고
몇 명은 아예 서로를 껴안고 통곡하기까지 했다.
난 아무 말도 없이... 환호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에프킬라맨이 되었다.

에프킬라맨이 된 후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
(에프킬라맨의 대활약상. 4부에 계속-_-)
사면발이나 후쿠오카 등의 인물들은 꿈 속에서 나온 그대로 묘사하려 노력하겠고 앞으로의 꿈 내용도 적극 반영하겠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