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31일 오후 9시
한국과 이란의 아시안컵 8강전이 열릴 중국 지난의 산둥경기장은 경기 시작 전부터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자기 나라의 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사람들이 관중석을 이렇게까지
채운 이유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으니
한국 선수들을, 그리고 우리를 향한 야유가 그 답이었다.
저들은 우리의 적으로서 여기 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적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에서 온 붉은악마가 100여명, 현지교민들 수백명이 전부였고
경기장의 약 십수개에 달하는 구역 중에 달랑 하나만을 배정받았을 뿐이었다.
그것도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한 자리에 몰아넣어서 공안으로 꼭꼭 둘러준
중국측의 배려였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적은 숫자였다. 그러나 결코 작지는 않았다.
하나같이 붉은 옷을 입고 경기 시작전부터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응원소리는 수만명의 '적'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우린 모두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에서 편히 하는 응원이 아니었다.
우리 중 일부는 한국에서 뱃길로만 스무시간, 버스로 일곱시간을 달려 여기에 이르렀으며
일부는 24시간도 채 안되는 일정을 잡고 거금을 들어가며 날라오기도 했다.
말 한 마디 못하는 아기에서부터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 대의 교민분들은
대부분 지난에서 멀리 떨어진 칭따오 등지에서 단체버스를 대절해서 수시간씩 버스를
타고 달려오신 것이었다. 어렵게 모인 사람들, 그런만큼 이들은 뜨거웠고 힘이 넘쳐 있었다.
이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생각은 모두 똑같았을 것이다.
그것은 축구였고 그것은 대한민국이었다.
저마다 걸치고 있는 붉은 옷과 손에 들고 있는 태극기가 이를 대신 얘기해주고 있는 듯했다.
경기장은 상암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장에 비해 너무 낙후한 수준이었다.
관중석과 필드가 너무 멀어 선수 등번호 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하나 달랑 달려있는 전광판은 경기 내내 스코어만 표시해 줄뿐
중계화면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너무도 열악한 상황.
그러나 우리는 경기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한국 대표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여기에 왔다. 90분 내내 서서 소리를 질러 그들을 복돋아주기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에 기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희미해지는 눈에 핏발을 세워주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경기는 하나도 못 봐도 상관 없었다. 다만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시간이 되어 선수들이 나오자 응원 전체를 이끈 용일이 형이
메가폰을 잡고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지는 고함소리.
'... 이 곳 중국 땅에서, 자랑스런 우리 조국의 이름을, 힘차게, 외쳐봅시다!'
온 몸이 찌릿해졌다. 악에 받친 듯 터져나오는 '대한민국' 소리가 경기장을 채우고
중국인들의 우우 하는 소리들을 싸그리 덮어버렸다.
내 목소리 또한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실려 검은 밤하늘 위에,
그리고 조명으로 빛나는 필드 위로 날아갔다.
이윽고 애국가가 흐르기 시작했다.
대형 태극기 통천을 올리는 역할을 얼떨결에 맡은 나는 땟물에 회색빛이 된,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광나는 거대한 태극기의 한쪽끝을 잡고 응원석 위쪽으로 다급히 뛰어갔다.
어느새 태극기의 물결이라는 멋진 장관이 내 코 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나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내 옆자리의 어느 교민 아저씨였는데,
그분은 태극기의 한쪽끝을 잡고서는 애국가를 반쯤 울면서 부르고 있었다.
음정도 틀리고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난 그만큼 감격적인 애국가를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외국에서 사는 사람의 나라 사랑이란 것이구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가사를 귀가 아니라 뼈가 듣는 듯했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태극기가 내려가고 휘슬이 울려 한국대 이란의 아시안컵 8강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쉴새없이 터지는 골들.
이란에서 골을 넣으면 경기장은 축제분위기로 돌변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끼리
파도타기를 돌리기 시작했고 우리를 향해 일어서서 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히죽히죽 웃으면서
외쳐대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양손에는 중국국기와 이란 국기가 같이 쥐어져 있었다.
월드컵 때와는 많이 달랐다. 그 때는 우리가 주인공이었고 메인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면 모두가 붉은 색이었고 모두가 한 목소리였다.
골을 넣으면 경기장이, 길거리가 들썩였고 골을 먹으면
안타까운 신음소리가 지면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주인공인 중국 팀을 위해 제거되어야할 '악역'에 불과했다.
그들은 우리가 골을 넣으면 야유를 보내었고 우리가 골을 먹으면 뛸듯이 즐거워했다.
모든 것이 반대였다.
그러나 맘에 들었다. 악역이라. 왠지 멋있지 않은가. 두고보라지.
경기내용도 주위 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붉은 악마들은 멈추지 않았다. 나야 가끔씩 축구장 찾다가 이번에
어쩌다가 온 냄비팬에 불과하지만 이 사람들은 한치도 틀림없는 그야말로 열두번째 선수였다.
지고 있든 이기고 있든 끊임없이 외쳐대고 외쳐대었다. 용일이형은 전반전 초반부터 목이
다 쉰 것 같았다. 나이가 많으신 교민분들도 끝까지 일어서서 함께 대한민국을 소리쳤다.
그러다가 골이 터지면 그 때의 열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두가 끌어안고 방방 뛰었고 어떤이들은 눈물을 주루룩 흘러대었다.
시원하고 후련했다. 경기 시작 전 내 자리를 얌체처럼 빼앗은
교민아저씨들이 있었는데 골이 터지면 그 분들과도 끌어안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축구의 힘인지, 아니면 외지에서 바라보는 조국의 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 번의 골이 터지는 동안 우린 미친듯이 환호했고 기뻐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안타깝게도 경기는 4대 3 한국의 패배였다.
한국이 골을 넣는 세 번의 열광을 맛보았으나 그것 뿐.
우리는 베이징에서 한국이 우승컵을 손에 들고 아시아 최강을 확인하는 장면을
꿈꾸며 여기에 왔으나 3년 뒤를 기약한 채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경기 끝나고 우리는 애국가를 4절까지 함께 불러대었고 아리랑을 불렀으며
선수들과 교민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도 선수욕을 하거나 불평을 터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편히 TV 앞에 앉아 쌍욕을 퍼부어대고 인터넷에 차마 말로 옮기지 못할
심한 욕설을 끄적여대는 사람들은 과연 이 사람들의 반 만큼이라도 축구를 사랑하기는 하는걸까.
이들은 그런 깊은 허무함 속에서도 질서정연히 자리를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좌우 중국구역의 수북히 쌓인 쓰레기들은
우리 구역의 종이조각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함과 확연한 대비를 이루어주었다.
내가 보기에 축구는 졌으나 붉은악마는 승리자였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고 열정적이었으며 강한 사람들이었다.
돌아오는 버스는 어두웠고 잠잠했다.
둘러보니 잠을 자는 이는 거의 없었다. 모두들 눈은 뜨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하는 이는 없었다. 패배는 이런 것이었다.
이럴 때보면 축구는 참으로 인생의 한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뜻대로 풀려나가지는 않는다. 억울한 순간도 많고
허탈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화나고...
인생의 모든 네거티브한 감정들을 몽땅 다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기쁘고 즐겁고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이 축구다.
긍정적인 요소들 역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과 똑같이 말이다.
그래서 난 축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은 오늘 극심한 절망을 맛보았지만 변치않는 마음으로 다시
붉은 옷을 입고 경기장에 설 것이다. 아니 멀리 볼 것도 없이 코앞에 닥쳐온
아테네 올림픽에서 비록 새벽녘의 TV 앞이 되겠지만
각 사람들의 마음 속에 뜨거운 대한민국의 함성이 다시 한 번 울러펴지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때는 오늘의 안타까움이 아닌 뜨거운 환호와 기쁨으로
다시 소리칠 수 있길 소망한다.
이어지는 것은 그날의 사진 스페셜.
호텔로비에 붙어있던 열렬환영한국홍마 내 인생에 열렬히 환영받은 적 언제 있었던가. 허허 |
출발 전 비장한 각오로 사진 한장. 머리에 COREA가 빛나지만 표정은 사기꾼 스럽다. |
저마다 복장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붉은 색이면 그걸로 오케이 |
경기장 밖. 멀쩡하게 생겼지만 상암이나 잠실경기장이 갖는 위용은 없었다 |
예전 볼트 사건 때문인지 꽤나 많은 중국 공안들이 투입되었다 |
강아지들까지 투입. 얘네들 나보고 확 달려들려고해서 무지 놀랐다 |
경기장 밖에서 기념 사진 한장 |
시합 시작 한 시간 전 경기장 풍경. 멀기도 무지하게 멀구만 |
경기시작. 비장한 연설이 시작되다 |
설기현의 멋진 첫번째 골. 당근 내가 찍은 건 아니다 |
전반전 마치고 폼 잡다. 저 멀리 2:2의 스코어가 보인다 이 때만 해도 당근 이길줄 알았었다 |
경기 종료. 김남일이 쓰러지고 만다 |
경기 끝나고 나가는 길. 허무하기 그지 없었다 |
내가 베이징으로 갔을 때 일행 중 일부는 산둥호텔로 가서 대표팀을 만나고 왔다. 조봉래 감독의 놀란 표정-_-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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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2004.08.1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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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a
2004.08.18 09:04
그러게 말이야 정말 넘 좋았을거 같다..
굉장히 많은걸 말하고 있고 글을 보고있는 나도 그때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이야...
이겼더라면 좋았겠지만 졌기때문에 너가 미친듯이 좋아라하는 축구는 인생이다가 성립된듯..
너무 값진 것들 몸으로 체험한 너가 참 멋지단 생각이 든다..~ -
유주
2004.08.18 23:19
''경기는 하나도 못 봐도 상관 없었다. 다만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
눈물 흘리며 불렀다는...애국가가 내 마음에도 메아리 친다~-_-aa
서로를위해 눈물흘리며 땀흘릴 수 있다는거...
나이가 들수록 더 힘든 일 같다...-_-:;
하나님앞에서 퇴색되지 않는 신앙을 가지도록 마음을 지켜야겠다...
성만의 값진 재산...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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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
2004.08.18 23:26
나나누나 / 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좋게 봐주어서 고마워용^-^;
jaya / 그래. 져서 오히려 생각할게 많았던 것 같다. 인생 뭐 다 그런게 아니겠냐궁-_-;
유주누나 / 늘 좋은 해석. 감격스럴 뿐이어요^^ 언제 같이 애국가나-_-;
굉장히 감동적이었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