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참치를 아시는가.
얘가 언제부터 시중에 풀리게 된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분명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짜장참지와 야채참치를 대동하고 짠하고 등장했는데
그 시절에는 이 녀석의 대단함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차피 집에서 먹는 참치는 볶던지 끓이던지 요리가 되어서 나오던 참인데
이런저런 미덥잖은 양념으로 감추어진 스타일에 눈길이 갈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고추참치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
2003년 본격적인 자취생 모드에 들어가서부터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자취생활 처음에는
모든 요리를 다 내 손으로 해 먹겠다는 굳은 각오로
각종 요리장비들을 구비하고 양파, 마늘, 당근, 파 등 각종 재료들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으며 인터넷의 여러 조리법들에 머리를 파묻곤 했더랬다.
그러나 아주 당연한 듯이 두달을 넘기지 못하고 깔끔하게 항복.
전형적인 사먹기 체제로 돌입하고 말았다.
이 사먹기 모드가 주는 절대적인 장점은
물론 편하다, 맛있다라는 점도 있지만 오히려 해먹기 모드보다
싸게 먹힌다는데 있다. 이 진실을 한 번 알게된다면
자랑할만한 요리솜씨를 가지고 있지 않는한 다시 해먹기로 돌아가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 그렇다면 삼시 세끼, 일주일에 스물일곱끼, 한달에 구십세끼를 다 사먹는달 말인가
말도 안된다. 당연히 자취생이라면 하루 세끼를 꼭꼭 챙겨먹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 산다'가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라는 가치관을
국민교육헌장보다 더욱 귀중한 삶의 지표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자취생이라면
아침과 점심을 통합하거나, 점심과 저녁을 합병하여
하루 두끼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기본중에 기본이다.
나의 경우를 말해본다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엔
10시 30분경 아점을 때린 후 다섯시경 저녁식사로 하루를 감사히 마무리 한다.
다섯시면 너무 이르지 않냐 생각될 수도 있으나 집에 가만히 있는 날, 즉 칼로리 소비와
육체적 무브먼트가 현저히 떨어지는 정적인 날엔 저녁 늦게 무언가를 먹는다함은
바로 몸무게 증가와 뱃살증대에 기여할 위험이 있다. 즉 피해야만한다.
하여간 이렇게 집구석에서 두끼를 먹는다하면
사먹기도 귀찮고 하니 내 손으로 해 먹을 필요성이 생긴다.
지난 2월에 산 10kg 짜리 쌀이 아직 남아있는 걸보면 이런 경우가 많이 생기지는 않는 듯한데
결국 내가 해먹기는 해먹어야 한다.
이럴 때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것은 물론 온국민의 영양간식, 라면이다.
여기서도 나의 선택은 약간 마이너한 쪽을 지향하는데
인기순위 부동의 1위인 신라면보다는 뭔가 맥이 빠진듯한 맛의 진라면을 선호하고
짜파게티보다는 짜장파티를, 너구리보단 오뚜기 스파게티를 많이 찾는다.
자세한 라면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근데 살다보면 라면 물 올리기 조차 귀찮아지는 날이 가끔. 아니 종종, 아니 자주자주 오게 마련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면 먹여주시는대로 입만 벌려서 턱만 움직이면 되는 거지만
혼자 산다는 것은 그런 호화성 사치행각을 허용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산업공학적으로 말한다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허기를 채운다는 욕구를 달성할 필요에
직면하게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분명 상당한 길이의 동선과 3~4분의 셋업시간을 요구하는 라면끓이기는
효율적인 선택이라 말할 수 없다. 컵라면은 어떠냐고? 1998년인가 컵라면에 남성에게 상당히
안 좋은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난 후부터 집에서 컵라면을 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럴 때일 수록 건강챙겨야된다. 진짜루.
아무튼 이 상황에 냉장고 한 구석에서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는 것이 처음에 언급한 고추참치다.
야채참치와 짜장참치가 진짜 맛없는데 비해 고추참치는 적절한 참치함유량과 조합을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더 매운 고추참치'라는 타이틀의 확장팩까지 나와있으니
소비자의 선택의 폭까지 넓혀주고 있다. 동원참치가 광고하는 예의 그 '건강에 좋다'라는
참치의 효능은 몸에 하등 좋을 바 없는 라면에 비해 언뜻 보기엔 훨씬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으로까지
느껴지게 하니 이런 고추참치만 있다면 냉장고에 별 맛 없는 밑반찬 거리들도 환하게 빛을 발하게 되고
30초라는 시간동안 차려진 저녁식사도 엄연한 앙뜨레를 포함한 정식으로 화한다.
요약하자면, 아주 편한 자취생용 반찬거리란 소리다.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것을 생각해낸 사람이다.
참치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선호식품이었지만 조리하지 않으면 먹기가 곤란하다.
이점에 착안하여 이렇게 양념을 추가하여 통조림으로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정말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일이란 건, 꼭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해내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를 가지고 나오지 않더라도
이러한 작은 변화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아지고 멋있어질 수 있는가보다.
그래서 나도 이 기회에 머리 좀 굴려보았다.
고추참치가 꼭 자취생을 대상으로 하여 개발되진 않았더라도 본의아니게
자취생에게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땅의 수백만 자취생을 타겟으로 하여 상품을 개발한다면
대단한 상업적인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여러모로 이 땅의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덕이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편리함'이겠지만
애정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의 먹거리를 생각한다면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줌으로써 더이상 피폐한 눈빛으로 캠퍼스를 거닐지 않게,
더이상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게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상품을 순식간에 고안해보았다.
★ 상 품 명 : 자취생용 영양반찬 'ALONE'
자취생 대부분이 이십대인 것을 감안해서 폼나게 영문으로 타이틀을 붙였다.
★ 형 태 : 참치형 통조림 형태. 크기도 똑같이 한다.
★ 출시의도 : 빠르고 쉽게 준비할 수 있으며 영양가가 풍부한 반찬을 원하는
자취생의 필요를 만족시킨다.
★ 가 격 : 무조건 1000원. 계산하기 좋다. 고추참치보다도 더 싸다.
★ 양 : 한끼에 다 못 먹고 남길 정도로 한다.
두끼에 걸쳐 먹을 수 있다면 라면을 가격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제낄 수 있다. 맛이 좀 진하거나 짜다면 양이 적어도 많이 먹을 수 없으나
이 때는 판매부진의 위험이 있으므로 적당한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
★ 영 양 : 1mg도 좋으니 각종 칼슘, 비타민 등 다 때려넣는다.
그리고 용기에 대문짝하게 써놓는다!
'얘도 함유!' '이놈도 함유' '쟤도 넣었어요! ' 이로서 참치통조림을 이길 수 있다.
★ 구성성분 : 건더기가 있어야 하나 크면 오히려 좋지 않다.
하나하나 먹을 때의 허망함이 커질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몇 개 집어먹었더니 없네' 는 식이면 곤란하다.
소고기, 돼지고기, 참치, 각종 야채들을 무조건 '잘게 썰어' 팍팍 집어넣는다.
소스가 비율상으로 월등히 많아도 상관없다.
★ 제품종류 :
☆ 매 운 맛 - 맵게 한다. 이게 인기가 있으면 '더 매운 ALONE'도 출시한다.
☆ 부드러운맛 - 스파게티용 크림 소스를 사용한다. 여자 자취생들을 노린다.
☆ 화 끈 한 맛 - 후추를 쏟아붓는다. 싸니까 원가도 별로 안 든다.
요 것들이 주가 되며 경우에 따라 다음과 같은 특화된 제품도 선보인다.
☆ 탕 수 육 맛 - 소스만 탕수육으로 한다.
☆ 제 육 볶 음 - 소스만 제육소스로 한다.
☆ 짜 장 맛 - 소스만 짜장으로 한다.
☆ 카 레 맛 - 소스만 카레로 한다.
(같은 방식으로 얼마든지 확장가능)
자취생의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별해도 괜찮을 것이다.
☆ 고시생전용 - 아예 밥까지 집어넣는다.
이 경우 이름을 ALONE이 아니라 Hapkyuk 으로 바꾸어도 괜찮다.
☆ 숙취해소용 - 아스파라긴산을 집어넣는다.
(같은 방식으로 얼마든지 확장가능)
★ 홍보계획 : CF 콘티까지 다 짜놓았다.
☆ TV광고 1
어두운 밤, 좁은 골목에 가수 '비'가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허무하게 앉아있다.
괴로워하는 표정. 속이 안 좋은듯 줄곧 배를 쓰다듬는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입에서 나긋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요기서 클로즈업)
'어머니.. 배고파요 흑 ㅜ_ㅜ'
그리고는 흘러나오는 나레이션.
"ALONE과 함께라면 더이상 힘들지 않습니다. 자취생용 영양반찬 ALONE'
아마 어머니가 30개들이 세트를 구입해서 자취하는 아들 딸에게 보내주지 않을까.
☆ TV광고 2
어두운 자취방, 가수 세븐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옆에 놓여진 상위에는 달랑 수저와 식은 밥 한 그릇, 말라빠진 김치 한 접시.
이윽고 라면이 다 끓고 세븐은 기쁜 마음으로 두 손으로 냄비를 집어드는데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옷가지에 걸려 그만 상 앞에서 넘어지고 만다.
공중을 가르며 날라가는 라면 냄비. 철퍼덕 소리와 함께 엎어지고 만다.
이 때 바닥에 쓰러진 그의 입에서 나긋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요기서 클로즈업)
'오늘 저녁은... 맨밥인거니 흑 ㅜ_ㅜ'
그리고는 흘러나오는 나레이션
'더 이상 라면으로 끼니때우지 마세요. 자취생용 영양반찬 ALONE'
라면업계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어쩔 수 없다.
괜찮지 않은가? 이땅의 자취생들이여 ALONE으로 일어나라! -_-ㅂ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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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2004.07.14 23:04
이 기회에.. 벤처로.. ㅎㅎ -
문★성
2004.07.16 08:10
같이 할래요? ^-^; -
ann
2004.07.17 10:49
역시 웃기는 성오빠^^ㅋㅋㅋ
그치만 그 속에 감추어진 불^^a
-
문★성
2004.07.19 09:08
불이라니-_- 독기를 품었단 말이니-_-;; -
인영
2004.07.19 17:08
우와~ 역시 대단한 성이오빠!!^^
영양소랑 식품함량은 제가 계산해줄게요.. 우리 동업할까요? ㅋ
'비'와 '세븐'은 저랑 한나랑 섭외하면 안될까요? -.-;;;
글구..
진라면 좋아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었네~
나도 뭔가 맥빠진 듯한 진라면이 좋던데...
나중에 라면 한사발 같이 합시다~! ㅋㅋㅋ -
문★성
2004.07.21 00:15
우와. 전문가인 인영이가 도와준다면야
왠지 진짜 해봐도 될 성 싶음-_-; 한나는 비 싫어하니 그건 인영양이 맡으시고, 진라면 먹는 건 언제든지 환영~ 주류 신라면을 물리치는 그날까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