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올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일기' 바로 옆페이지에서
발견된 일기로 당연히 두번째로 오래된 유산으로 추정된다.
이 시절 일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자세히 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우선 텍스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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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생님학태
노래를 볘여은니다
이를은 종달새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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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하자면 "오늘은 선생님한테 노래를 배웠습니다. 이름은 종달새입니다" 이다.
우리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소시적의 난 '매우 띨빵했다'라고 하는데 꼭 그 때문이 아닐지라도
맞춤법 저 따구로 마구 틀리는 거, 그 나이 때엔 지극히 당연스런 일이었다.
것보다 '볘여은니다'라는 발음하기조차 힘든 미려한 문구를 보라.
뭔가 범상치 않은 미래가 이 아이의 앞에 뭉글뭉글 피어오를듯한
희망찬 므흣함이 눈앞에 어른거리지 않는가.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잘 회상해보시라.
'종달새'라는 동요가 기억나는가?
음.. 아마 고개가 갸웃갸웃해질 것이다.
아. 뭐더라? 하면서 눈사이를 한껏 찌푸릴 수도 있겠다.
여기서 한가지 힌트.
대부분의 동요는 제목만 몇번 중얼거려봐도 금새
노래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미심쩍다면 다음을 유심히 보시라.
예시1)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예시2) 태극기~♬ 태극기~♬ 가 바람에~
예시3)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예시4) 병아리~♬ 병아리~♬ 때 쫑쫑쫑~
예시5) 비행기~♬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위의 예시에서 보여지듯 동요란 것은 방금 내어온 피자의 치즈처럼
살짝만 들어올려도 끈적끈적 따라올라오기 쉽상이다.
그러나 종달새~ 종달새~
아무리 흥얼거려봐도 그 가락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종달새라는 동요를 배우지 않았거나
혹은 배웠더라도 매우 마이너한 부류의 동요로
치부하여 하찮게 여겼던 것이다.
혹은 '반공' 두 글자가 여전히 교실 앞편 태극기 액자와
지금 찢어지게 가난하시다는 모 각하 사진 사이에
붙어있던 당시 사회적 정황으로 짐작해볼 때 이 동요가
작곡가의 사상문제로 인해 정규 유치원 음악교육과정의 주류에서 배제된
비극적 사건의 피동적 희생자로 낙인찍혔을 수도 있다는 가정도
조심스레 제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증없이 심증만으로 이루어진 추측은 위험한 일.
자. 이제는 눈을 그림으로 돌려 그림 속 선생님의 말에 주목해보라.
기 쁠 산 속 -_-
기 쁠 산 속 -_-;;;;;
기쁘다의 미래형을 써서 앞으로 기쁘게 될 산속?
이상의 오감도도 아니고 동요에 그런 고차원적인 어구가 포함될리 없다.
정규유치원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한 당신이라면 쉽게 짐작해낼 수 있을
저 말의 본 뜻. 그렇다. 당근
깊 은 산 속
이다.
음. 종달새라는 동요에는 '깊은산속'이라는 구절이 포함되었구나. 이거 새로운 지식인걸~
하고 고개를 끄덕인 당신은 17대 국회가 이끌어나갈 미지의 신세계를
선도할 자격이 없다. 조금 더 생각해보시라
~ 옹달샘♬
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가!
뒤를 이어,
누가와서 먹나요오오~♬
가 따라 나온다면 굿 잡. 매우 훌륭한 퍼포먼스다.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이마에 정성스레 눌려받을 자격이 있다.
그래.
난
옹달샘을
종달새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가사를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은 산속 종달새 누가 와서 먹나요
라는 이 무섭고도 살벌한 가사를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단 말인가.
앞의 일기도 그랬지만
저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부담스러운 녀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