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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사랑니

문★성 2004.03.29 09:08 조회 수 : 275

 



          드릴 소리와 함께

           깨어지는 내 몸의 일부

           하얀 파편들이 떨어져나가며

           입천장에 부딪힌 후

           힘없이 추락하는 것이

           느껴진다

           입을 찢어놓을 듯 벌리는 의사의 우악스런 손아귀와

           어느새 입안 가득 고여가는

           틀림없이 검붉을 피

           느낄 수 있다

           내 안에

           '사랑'이란 이름을 지닌 또 하나가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음을




           제대로가 아니라

           누워서 났기 때문에 그냥 뽑지 못하고

           잇몸을 찢어낸 후

           산산조각 부수어 들어내고 있다

           신경 가까이에 박혀있다는 내 사랑니의

           마지막 뿌리 하나는

           한참동안

           몸이 들썩거릴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주더니

           결국은 이 처참한 이별을 고개 끄덕여

           허락해주고는 그만 안녕을 고한다


           왜

           내 몸에서 나서 내 몸에서 자란 것을

           거기 있는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밖으로 내쳐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내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시작부터가 잘못이었다고

           더듬거리며 내뱉는 변명은

           사랑니가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소리에 묻혀

           입술을 벗어나지도 못한다




           수술은 끝났다

           오랫동안 붙어있던 둘은

           이제 하나 될 수 없는 남이 되었지만

           잇몸이 토해내는 원망섞인 붉은눈물은

           여전히 입안 가득 배어져 나온다

           뱉으면 안된다 삼켜야 한단다

           참을 수 없는 피비린내를 느끼며

           눈을 꼭 감고

           목구멍으로 꾸욱 밀어넣는다

        
           앞으로

           대체 얼마동안 이 역겨운 슬픔을

           감당해야하는 것일까

           잘게 바스라진 시뻘건 사체(死體)들에게

           한 걸음 다가서려다

           고개를 저으며 돌아선다

           그들에게 미련은 없다

           미련은 오직 내 입 안에 남겨질 뿐

           눈을 꼭 감고

           목구멍으로 꾸욱 밀어넣는다




           조금 있으면 마취가 풀리고

           얼얼한 느낌으로 은폐되었던 진실이

           현실로 다가오겠지

           당장 오늘 밤

           심장소리와 공진하는 깊은 통증이

           사랑니가 뽑힌 자리

           그 위를 어지럽게 맴돌겠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겠지

           밥을 먹을 때나

           거리를 걸을 때

           문득 느껴지는 아픔과 허전함에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겠지

           지난 날

           '사랑'이란 이름을 지닌 것들을 내 속에서

           들어냈던 그 날들처럼

           난 또 힘들어하겠지



           그래

           잘 못 난 사랑니는 뽑아야 하는것

           잘 못 난 사랑 역시 뽑아야 하는 것

           내 안에

           '사랑'이란 이름을 지닌 마지막 하나가

           그렇게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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