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소리와 함께
깨어지는 내 몸의 일부
하얀 파편들이 떨어져나가며
입천장에 부딪힌 후
힘없이 추락하는 것이
느껴진다
입을 찢어놓을 듯 벌리는 의사의 우악스런 손아귀와
어느새 입안 가득 고여가는
틀림없이 검붉을 피
느낄 수 있다
내 안에
'사랑'이란 이름을 지닌 또 하나가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음을
제대로가 아니라
누워서 났기 때문에 그냥 뽑지 못하고
잇몸을 찢어낸 후
산산조각 부수어 들어내고 있다
신경 가까이에 박혀있다는 내 사랑니의
마지막 뿌리 하나는
한참동안
몸이 들썩거릴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주더니
결국은 이 처참한 이별을 고개 끄덕여
허락해주고는 그만 안녕을 고한다
왜
내 몸에서 나서 내 몸에서 자란 것을
거기 있는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밖으로 내쳐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내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시작부터가 잘못이었다고
더듬거리며 내뱉는 변명은
사랑니가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소리에 묻혀
입술을 벗어나지도 못한다
수술은 끝났다
오랫동안 붙어있던 둘은
이제 하나 될 수 없는 남이 되었지만
잇몸이 토해내는 원망섞인 붉은눈물은
여전히 입안 가득 배어져 나온다
뱉으면 안된다 삼켜야 한단다
참을 수 없는 피비린내를 느끼며
눈을 꼭 감고
목구멍으로 꾸욱 밀어넣는다
앞으로
대체 얼마동안 이 역겨운 슬픔을
감당해야하는 것일까
잘게 바스라진 시뻘건 사체(死體)들에게
한 걸음 다가서려다
고개를 저으며 돌아선다
그들에게 미련은 없다
미련은 오직 내 입 안에 남겨질 뿐
눈을 꼭 감고
목구멍으로 꾸욱 밀어넣는다
조금 있으면 마취가 풀리고
얼얼한 느낌으로 은폐되었던 진실이
현실로 다가오겠지
당장 오늘 밤
심장소리와 공진하는 깊은 통증이
사랑니가 뽑힌 자리
그 위를 어지럽게 맴돌겠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겠지
밥을 먹을 때나
거리를 걸을 때
문득 느껴지는 아픔과 허전함에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겠지
지난 날
'사랑'이란 이름을 지닌 것들을 내 속에서
들어냈던 그 날들처럼
난 또 힘들어하겠지
그래
잘 못 난 사랑니는 뽑아야 하는것
잘 못 난 사랑 역시 뽑아야 하는 것
내 안에
'사랑'이란 이름을 지닌 마지막 하나가
그렇게 사라져갔다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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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2004.03.29 22:11 외로움(?)의 깊이를 더해가는 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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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주2004.03.31 12:13 크크크크~~~ 정말...사랑의 절규같당~!!
 마치가 풀리고 나면... 하룻밤만 지나도... 괜챦아 질꺼얌...
 멋진 사랑고백이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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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2004.03.31 22:04 어찌 이걸 멋진 사랑고백으로 보십니까 ㅜ_ㅜ 반쯤 울먹이며 쓴건대요-_-;
 사랑니는 지지난주에 뽑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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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光식2004.04.02 10:42 젠장, 나도 6여년전 "왼쪽 아래의 누워서 난 사랑니"를 드릴로 네조각 내서
 긁어낸 적이 있느니라.. 그때 너무 아파서 아직도 "오른쪽 아래의누워서 난 사랑니"를 뽑고 있지 않다.
 
 며칠전 거사일을 잡았다.
 과연 맨정신으로 치과에 걸어갈 수 있을까?
 걸어 나올 수 있을까?
 
 젠장...
 너무 가기 싫다.
 
 그날 밤 통증은 어느 정도였냐?
 난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안난다.....
 몸은 기억하고 있나보다..
 몸은 "오른쪽 아래에 누워서 난 사랑니"를 안 뽑을려고 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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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2004.04.02 21:13 사실 수술할 때 빼고는 괜찮았어요. 그날 병원에서 바로 과외하러 가고 다음날엔 형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음주하고 밤 늦도록 놀았잖아요-_-; 그냥 뽑으세요. 확확. 싸나이답게. 그치만 '긁어낼 때'는 가히 죽음직스럽다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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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주2004.04.02 23:58 흐흐흐... 사랑니 뽑은 친구들이 어찌나 겁을 주던지...(뽑다가 기절해서 응급실로 갔던 친구부터해서... )그래서...몇년이 지난 어느날.. 누워서 깊게 뿌리내린 사랑니를 뽑았더랬죠...입안에 고이는 피를 삼기는 괴롬만 빼고는 생활하는데 별 어려움 없던데... 사랑니... 겁내지 말고 빼자고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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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2004.04.03 13:42 잘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구석진곳에 자리잡은 사랑니라서 인지!! 더욱 애착이 가는 걸까?난 걍 달구 다닐레..살아가는데 별 지장없는 사랑니를 이유도 없이 뽑아 내야할 필요는 없는것 같아!! 담에...날 아프게 하거나 사랑니가 죽도록 싫어지는 이유가 생기면 그때가서 함 생각해봐야지..
 
 성이 얼굴이 퉁퉁부어보였던 이유를 알겠어..^^
 난 글러브로 한방 얻어맞은줄 알았네..
 너의 글을 보고선 사랑니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잊고살았는데..신경좀 써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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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2004.04.04 22:08 사랑니 뺍시다!! (이 글 주제는 이게 아닌데-_-)
 경이언니같이 뽑지 않으려면.. 관리를 잘합시다-_-;;
 (얼굴 하나도 안 부었었는데 미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