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땅콩회항사건의 피해자였던 김 사무장이 양심고백을 했다.
다른 승무원들이 주장한, 폭행과 폭언이 없었다는 증언은 거짓이며 오너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라는 압박을 받았음을 언론에 실토한 것이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가 입을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그가 만약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대한항공에서 모종의 혜택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항간에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모 대학 교수 자리를 꿰차거나,
금품이 되었든 승진이 되었든 한몫 두둑하게 챙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양심의 소리를 따랐고, 그 결정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을 감수하게 되었다.
나름으로 분투하고 있긴 하나 대한항공에 오래 남아 있긴 힘들 것이다.
회사에서 좌천되고 밀려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눈치와 불공정한 대우 속에 쓸쓸하게 회사를 나와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8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 다른 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벌들의 범죄가 그러하듯 문제를 일으킨 조부사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실형을 받더라도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사면될 것이고
관련 검사나 판사는 한진그룹에서 임원 자리를 받게 될 것이다. 승자는 여전히 조 부사장과 높으신 분들일테고, 김사무장은 패배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와 지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대한민국의 실체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그 더러운 실체 앞에서 담담하게 진실을 말했다.
부림사건 때 쩌렁쩌렁 진실을 외쳤던 영화 변호인의 송 변호사 - 노무현 대통령처럼,
4대강의 문제를 말한 뒤 징계까지받은 김이태 연구원처럼,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후 모든 것을 잃은 김용철 변호사처럼,
그 밖에 세상의 불의에 용감하게 맞선 수많은 이 사회의 영웅들처럼 말이다.
정의를 위해 인생을 던진 그들의 용기 앞에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게 된다.
나는, 동일한 상황에서 저들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내가 손에 쥔 것들 혹은 손에 쥘 것들을 용기있게 포기하고
내 자신과 내 가족에게 어떠한 피해가 오고 어떠한 불이익이 오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부끄럽게도 난 그럴 자신이 없다. 양심상 불의에 부합하지는 않더라도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용기가, 자신이, 신념이, 올바름이, 당당함은 내겐 없다.
그저 저렇게 정의와 불의를 판가름하고 스스로의 양심을 재단해야 하는 자리를 맞닥뜨리지 않길 바라는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일 뿐이다.
이래서야 곧 태어날 아이에게 무엇이 옳고 그름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좋은 아버지가 되기엔 턱없이 먼 나를 본다.
[신해철의 노래 ‘기도’]
나를 절망의 바닥 끝까지 떨어지게 하소서.
잊고 살아온 작은 행복을 비로소 볼 수 있게.
겁에 질린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라 해도.
아니건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입술을 주시고.
내 눈물이 마르면 더 큰 고난 닥쳐와 울부짖게 하시고
잠못 이루도록 하시며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노력한 것 그 이상은
그저 운으로 얻지 않게 뿌리치게 도와주시기를.
멀리 날게 하소서
내가 날 수 있는 그 끝까지
하지만 내 등 뒷 편에서 쓰러진 친구 부르면
아무 망설임없이 이제껏 달려온 그 길을
뒤돌아 달려가 안아줄
그런 넓은 가슴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