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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 몇 발자국 앞에 굉장히 잘 차려입은 젊은 여성 두 명이 걷고 있었다.

명품가방에다 비행기 타기엔 불편할 것만 같은 화려한 옷이라 뒷모습만 봐도 공항패션이니 뭐니 해서 꽤 멋을 부린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조금 멀리서 대한항공 여승무원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네댓 명 되어 보였는데

스튜어디스다 보니 아무래도 하나같이 인물 좋은 미인들이었고 내 앞에 걸어가는 여자들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커 보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지들끼리 깔깔거리며 걸어오던 승무원들은 이윽고 내 앞의 두 여자와 나를 지나쳐 제 갈 길을 갔고,

당연히 우리에게는 눈길 한번 안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의 여자 두 명 중 하나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더니

지나가는 그들을 아주 짧게 바라봤다. 십여 걸음 뒤에 있던지라 우연히 보게 된 그 눈빛은, 뭐랄까 쓸쓸함과 시샘, 안타까움이

불규칙적으로 섞인, 무척이나 불쌍해 보이는 성질의 것이었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슬쩍 바라본 것일 수도 있고

아는 사람과 닮아서 돌아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내게는 나름 예쁘게 공들여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레벨이 다른 미(美)를 맞닥뜨린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일순간 주눅이 든 것처럼 느껴졌다.

24개월 할부로 오랫동안 꿈꿔오던 좋은 중형차를 뽑아 집으로 달려오던 남자가 맞은 편에서 오던 꿈에 그리던 외제차를 마주하고는

단박에 기가 죽어버린 것 같았달까.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그 짧은 순간의 시선과 표정이 내게는 그리 보였다.

물론 남이 나보다 예쁘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여자도 많을 테고 내 나이쯤 되면 다들 조금씩 그런 '아름다움을 비교하는 무대'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육아 등에 신경을 더 쓰게 되는 것 같긴 하지만 한국 사회처럼 물질적이고 남과의 비교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꾸미지 않을 수도 없지만 열심히 꾸며봤자 '타고난 이쁜 것들'에게는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

김태희처럼 천하절색이라 하더라도 나이 들면 손연재 같은 '새파랗게 어린 것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구조.

이를 거역하고자 얼굴에 손 좀 대면 대뜸 '성형괴물'이라 손가락질당하는 구조.

여자들에게는 참 피곤한 세상이겠구나 하는 생각, 더불어

어떤 여자든지 간에 결국 '무대'에서 내려오는 시기는 있겠구나. 중학교 때이든 서른이든 마흔이든지 간에

그 내려오는 과정 자체는 매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아마 그 때가 되면 저 여자와 같은 눈빛으로

아직 무대에 서 있는 자와 무대에 갓 들어오는 자를 쓸쓸히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인천공항 롯데면세점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 거리며 곱씹고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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