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건강관련 서적 등을 십 여권 읽으면서 다짐한 것 중 하나가 '약을 먹지 말자'였다.
건강을 위해 섭취하는 비타민이나 건강보조식품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와 질병의 근본적 원인은 건드려보지도 못한 채
발열, 설사, 두통과 같은 증상만 억지로 멈추게 하는 각종 치료약의 부작용들, 그리고 암 자체보다 암 사망률을 높게 한다는 항암치료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스스로의 장수와 건강을 위해 만들어낸 약물들이 결국 인간을 병마 앞에 한없이 무력하게 하여 더 큰 질병을 초래한다는 주장에
동의를 했기에 꽤나 오랜 기간을 두통약 하나 먹지 않으면서 버텨왔던 것이다. 덕분에 반나절 만에 나을 수 있는 병도 이틀을 앓아눕곤 했는데
이것이 몸의 진정한 면역을 키워주는 길이라는 것에는 추호에 의심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허나 이번 베트남 - 말레이시아 - 싱가폴 - 인도 - 태국에 이르는 굉장히 타이트한 출장길에 두통과 기침을 동반한 몸살감기에 걸려버리니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마냥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당장 내일 아침 발표인데 자료는 준비되어 있지 않고 머리가 띵하고 눈에 초점이 흔들려
일을 할 수 없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수 없이 항생제와 감기약을 빌려 먹을 수밖에 없었고 증상은 금새 호전되었다.
(그래도 끝끝내 진통제는 안 먹고 버텼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몸이 안 좋은 것은 쉬어야 한다는 얘기다. 머리가 아프면 머리를 쉬고, 배가 아프면 배를 쉬게 만들라는
몸의 알림이다. 하지만 아프면 그냥 누워버리면 되는 동물과 달리 현대의 인간은 그래도 계속 일을 해야하고 돈을 벌어야 하니
자연적으로 나을 때까지 쉬지도 못한 채 약을 먹어가며 일을 해야한다는 거다. 이 무슨 노예같은 인생이란 말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아자아. 모두모두 약을 먹어가며 진통을 참아가며 일을 하자. 은퇴의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