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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의 인생사전] 02 - 나잇살

문★성 2012.11.21 21:39 조회 수 : 34

예전에 근무하던 대전사업장에는 탈의실과 샤워실이 있어서
본의 아니게 삼사십 대 아저씨들의 벗은 몸을 쳐다볼 기회가 많았는데
처음 입사했을 때 눈에 들어온 그들의 몸매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배는 튀어나오다 못해 아예 아래로 축늘어졌거나 임산부처럼 빵빵하게 부어올라있었고
근육이 자리잡은 흔적 하나 찾아볼 수 없었으며,
팔과 다리는 성장기 사춘기 소녀의 것인양 얇고 가느다랬다.  
흔히 일컬어지는 ET형, 거미형 몸매는 일견 징그러워보이기까지 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결혼도 했고 더 이상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저렇게  스스로에게 투자를 하지 않을까, 저렇게나 몸을 함부로 방치해둘까 하는 생각에
속으로 혀를 끌끌 차기까지 했다. 그들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 따윈 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 당연한 것이니까 말이다.

허나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 거울에 비친 내 몸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당시의 그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묘사하기 싫을 만큼 몸매가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주는 아니지만 운동은 하고 있으며
남들에 비해 그리 과식을 한다거나 고칼로리 음식만을 골라먹는 것도 아니다.
살찌기 쉽다는 저녁 회식도 동남아 온 뒤로는 거의 하지 않았으며
때때로 다이어트를 해서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줄여본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몸매가 무너져 여기에 이르렀다.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살이 찐다는 세삼스러운 이유 때문이다.

이제야 깨닫게 된다.
내가 흉봤던 그들의 몸매는 특별히 그들이 무언가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 나이에 탄탄하고 늘씬한 몸매를 가지지 못한 그들이 못난 것이 아니라
그 나이 들어서도 괜찮은 몸매를 가지고 있는 아저씨/아줌마들이
정말 대단하고 독하다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이를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만만했던, 그리고 나만은 다를 것이라 믿었던
이십대 중후반의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 역시도 지금에야
담담한 분함과 더불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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