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 점심먹고 옷 입은 상태에서 카메라 들고 잰 거임)
일일 점수표까지 매겨가면서 주력했던 말레이시아에서의 식단조절은
기대와는 달리 신체의 건강에 그다지 도움이 되진 못하였던 것 같고,
가뜩이나 바닥나 있던 인생의 즐거움이란 요소를 더 제약하는 바람에
정신적 건강에도 해가 되면 되었지 득이 되진 못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 싱가폴 프로젝트도 초반 몇 주는 매일 샐러드로 저녁을 때우는 등
지루한 자기 절제를 이어갔으나 한 2주 전 드디어 내 안의 무언가가 극렬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재미없어 못살겠다, 우리도 좀 잘 먹고 살자 라는
내 위장과 창자의 외침이 양쪽 달팽이관을 흔들어댔고
대뇌 중뇌 소뇌 간뇌 등 수뇌부도 이 신체리듬의 '쿠데타'를 인정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몸과 머리가 힘이 빠져 있었던 거다. 자기통제에의 의지도, 자기계발에의 열정도
이미 새우처럼 등을 말고 널부러져 있어 조금의 저항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동안 절제, 자제하던 아래의 음식들을 마구 먹어대기 시작하였다.
- 오렌지마말레이드와 땅콩버터가 듬뿍 발린 토스터 (거의 매일 먹었음)
- 스타벅스의 녹차와 모카 프라푸치노 (이틀에 한 번꼴로 먹었음)
- 회사 자판기에서 받아마시기 시작한 마운틴듀 (하루에 1-2캔씩)
- 역시 회사 커피자판기에서 매일 받아마신 모카커피 (이건 하루 1회)
- 금요일/토요일 밤이면 조제해먹었던 진콕과 포카칩
- 마트에서 사다 먹은 한국 짜파게티와 라면 (2주 동안 6번 정도 먹었음)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는 깨나 엄격하게 지켰던 '밥 먹는 도중엔 물을 마시지 않는다'
라는 규칙도 여름맞이 수박 깨듯 깨뜨려 집에서든 밖에서든 음료수를 거진 밥 말아 먹을 기세로
끼니때마다 배가 빵빵해지도록 실컷 들이마셨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식사 전후로 1시간 30분 동안 물은 입에 대지 못하게 했었다)
이랬더니 배가 즐거워졌고 배가 즐거워지니 인생도 즐거워졌다. 재밌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식사가 기다려지고 퇴근하면 저녁식사가 기다려졌다.
인생은 재밌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오래간만에 들었다.
그러다 오늘 몸무게를 재어보니 위의 사진의 꼴이 되어 있었다.
2.5에서 3kg가 더 불은 것이다. 단 2주 만에!
섬찟했다. 나도 드디어 '몸이 정직해지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먹으면 찌는 나이, 무리하면 아픈 나이, 피곤하면 졸리는 나이 말이다.
이렇게까지 몸이 정직해서야 이 추세로 간다면 순식간에 70kg 대도 넘고 말 것이다.
가뜩이나 볼품 없는 외모인데 내 키에 몸무게가 70이 넘어가면 얼마나 흉할 것인가.
하는 수 없이, 오늘부터 모든 것을 말레이시아 시절로 돌려 다시금 예전처럼
관리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잖은가. 뚱땡이가 되는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마음껏 먹지 못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클 것이니 계산상 이쪽으로 가는게 맞잖은가.
그동안 즐겼던 모든 아름다운 음식들에 작별을 고할 수밖에.
안녕. 땅콩버터, 오렌지마말레이드, 포카칩, 진콕, 프라푸치노, 마운틴듀, 모카커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아끼는 내 사랑 짜파게티여.
언젠간 또 만나겠지만, 일단 잠시만 좀 헤어져 있자꾸나.
인도에서의 59kg를 옷 입고 기록했던 기억이 불연듯 머리를 스치운다.
미남대회(!) 나갈 것도 아닌데 적당히 먹고 적당히 즐겁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