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싱모델 '이수정'씨.
작년 한 프로야구 경기에서 왠간한 남자들은 흉내도 못낼 멋진 시구를 선보인 후,
야구팬들에게 화제가 되어 이후 시구를 두 번이나 더했고,
연말 골든글러브 시상식에도 초대되었으며 위 사진처럼 잡지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레이싱모델이다. 키크고 날씬한 거야 다른 레이싱모델도
마찬가지이니 별 다를 게 없고, 얼굴도 스스로 성형했다고 고백할만큼
제법 고친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그룹 아이돌처럼 예쁘지도 않다.
게다가 나이는 85년 생이니 벌써 스물 여덟, 얼굴과 몸매로 먹고 사는 모델 업계에서는
사실 수명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사람, 어떻게 연습했는지 야구공을 던지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레이싱모델은 물론 지금까지의 그 어떤 여성 시구자보다 빼어났고,
한 번 주어진 기회를 멋지게 살림으로써 단번에 평범한 ‘그냥’의 레이싱모델과는
뭔가가 다른, 특별한 레이싱모델이 되어 버렸다. 작년 어느 야구장에서 던진
단 하나의 공이 오늘의 그녀를 완연히 달라지게 만든 것이다.
회사나 자기계발서에서 종종 언급하는 ‘차별화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회사’를 넘어 ‘무언가 특별한 회사’가 되기 위해,
‘그냥 직장인’을 넘어 ‘무언가 특별한 직장인’이 되기 위해,
그리고 ‘그냥 남자’를 넘어 ‘무언가 특별한 남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그냥'들이 가지지 못한 '수식어'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말이다.
‘레이싱모델 이수정’에서 ‘공을 정말 잘 던지는 레이싱모델 이수정’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매출도 작고 다루는 제품도 간단한 편인 위생용품 업체 유한킴벌리가
나름 대학생들이 기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 중 하나로 뽑히고
전문가들에 의해 존경받는 기업 상위권에 몇 년째 오르는 것도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수십 년간의 캠페인을 통해
‘환경에 신경을 쓰는 좋은 회사’ 라는 수식어를 획득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고,
반대로 내가 대학 졸업시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비슷비슷한 나이 또래의
수많은 취업준비생 중에서 뭐하나 특별한 것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의 나는 어떤가?
남들과는 다른, 그래서 나를 '그냥' 에서 '무언가 다른'으로 만들어줄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여느 삼십 대 초반의 남자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심심하고 매력없는 사람일 뿐인가?
아쉽지만, 답은 부정적이다.
늙기를 거부하는 어린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