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은 '은교'.
얼마나 사람을 빠지게 하던지 저녁 먹고 잠깐 쉬면서 봐야지 하면서 폈던 책을
않은 자리에서 한숨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밀린 일을 나중에 처리하느라
제법 혼이 났었고.
최근 동명의 영화로 화제가 되어 읽은 것이긴 한데, 세간에 알려진 대로
그저 자극적인 내용으로 치부하기에 책의 주제가 가슴을 울리고, 책의 문체가 손을 떨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배껴적고 싶다고 생각이 든 책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나도 짧은 소설 몇 편 써본다고 애쓴 적이 있지만 비슷하게 흉내도 못낼
멋진 묘사와 부드러운 은유와 참신한 직유가 가득했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빼어난 필력에
먹고 싶은 음식을 보며 안달하는 어린애처럼 책을 보며 몇 번이나 입맛을 다셨는지 모른다.
근간을 이루는 스토리는 익히 알려진 바, 어린 소녀를 사랑하게 된 노인의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는 제대로 표현이 안 된 것 같은데 책에서는 노인의 애욕에 대한 묘사보다는
나이드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지, 그 심리에 대한 묘사가 징그럽게도
사실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늙어 고목나무처럼 되어버린 말라 비틀어진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다 문득 만나게 된 '수맥처럼 연푸른 핏줄이 가로질러' 흐르는 여린 손등을 가진 소녀 -
책의 주인공은 말한다. '내가 평생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로망이 거기 있었'다고.
그러니 그가 느꼈던 감정은 ‘사랑’이기 보다는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경외감’이었고
‘경탄'에 가까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거라면 아직 늙었다 할 수 없는 나도 공감할 수 있다. 지금도 벌써 열 살씩 어린
친구들을 보면 참 좋아 보인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 반대로 눈을 돌이켜
스스로를 바라보면 참으로 답답한 기분이다. 예전 곱던 피부는 어디로 갔는가.
초롱초롱한 눈빛은 어디로 갔는가. 나름 탄탄하던 몸매는 어디로 갔는가.
거울 속에 보이는 이 멍텅구리 같은 초췌한 '아저씨'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삼십 대의 나를 보는 게 이렇게 힘든데 사십, 오십, 육십, 칠십 그리고 팔십 대는
또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그 때 바라보게 될 이십 대의 젊음은 어떻게 다가올까.
질투일까. 부러움일까. 분노일까. 무시일까. 안타까움일까. 절절함일까. 속상함일까!
은교의 주인공은 여기서 '사랑'이란 감정을 하나 더 고른 것 뿐이다. 물론 세상은 그걸
용납하지 않기에 좌절은 더욱 깊어진 것이고.
나이 드는 게 서글픈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아마 세 곱절은 더
우울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