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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가려서 읽어야 한다. 가끔씩 충분한 검토없이 책을 구입하는 바람에
시간과 돈을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최근에는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란 책을 보면서
스스로의 어리석은 책 선택에 볼멘소리를 뱉어내야 했었다.

더불어 같이 읽은 책이 ‘박경철의 자기혁명’이었는데 저자의 다채로운 지식과
깊은 사색이 담겨 있는 이 책에 비해 ‘독서천재’는 동감할 수 없는 저자의 편협한 주장과
이를 전혀 뒷받쳐주지 못하는 배경지식으로 인해 마치 초등학생용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다.

‘독서천재’가 강조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다독’이다. 그래야 성공한다는 거다.
구체적으로는 인생이 변하려면 100일에 33권의 책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엔 1년에 365권에 책에 도전해야 된단다. 근거는 없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되는지 고전(古典)이나 고사(古事)에서 문장 하나 끌어오지 못하고
구체적 실증 데이터 하나 제시하지 않은채 그저 그런 경로를 통해 성공한 가상의 인물들만
소설 상에 죽 나열하면서 ‘너도 애네들처럼 성공하고 싶지? 그럼 무조건 많이 읽어’ 라
꼬득이고 있을 뿐이다.

아래는 책 속에 등장하는 ‘멘토’가 주인공에게 권면하는 책들이다.


“우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시대 성공한 CEO들의 책 100권이죠.
그리고 사무엘 스마일즈의 ‘자조론’ 같은 정통 자기계발책들 100권. (중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더십을 기르는 책 165권, 여기엔 위대한 인물들을 다룬
위인전과 자서전 평전이 포함되죠”


세상에, 닥치는대로 많이 읽고보자는 주장에도 아연실색할 지경인데
아예 ‘성공’, ‘자기계발’, ‘리더십’에 대한 책만 읽으라고 설파하고 있다.
대체 독서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시집까진 바라지 않지만 고전이나 현대문학, 예술, 경제, 정치, 역사, 과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만나봐야 지혜가 자라고 생각이 넓어지고 안목이 깊어질텐데
저렇게 줄창 자기계발만 읽으면 그 생각의 편협함은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공교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의 저자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의 말이다.

“그렇게 약 2천 여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고 나자 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구나. 자기계발서를 2천권 읽으면서 된 ‘전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자기계발서만 죽도록 읽으라는 사람이었다.
아, 이건 제법 섬칫하다.

글쎄다. 독서라는 것은 워낙 다양한 면면을 가지고 있어 그 존재의 목적을 정의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독서는 간접경험을 통해
자기를 확장하기 위한 과정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을 읽으면서 무뎌진 감성을 주무르고,
역사책을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시각을 가지게 되며
정치나 경제관련 책을 통해 현재의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는가.  
이렇게 자꾸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남의 지식과 지혜를 경로로 만나게 되고
그것을 적절한 고민을 통해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는 거절함으로써
내 사유의 경지, 내 지식의 경지, 내 감성의 경지를 넓혀가는 것이 독서 아니겠냐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작정 속독만 해서 권수만 늘이기보다는
책에 따라서는 일주일씩 불잡고 한 문장 한 문장 되짚어가며 읽을 필요도 있다.
저렇게 줄창 자기계발서만 보고 있으니 1년에 365권도 읽고 7년 동안 2천권도 읽는 거다.
‘역사란 무엇인가’, ‘죄와 벌’, ‘상대성원리’, ‘죽음의 한 연구’ 이런 책들을 잡아보면
하루에 한 권 읽는다는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는 것이 ‘독서천재’ 같은 책을 매년 365권 읽는 것
보단 낫다는게 내 생각이다.

가려서 읽자. 그래서 제대로 읽자. 비싼 돈 주고 비싼 시간 들여 읽는 건데
뼈와 살이 되어 내 속에 자리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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