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900쪽이 넘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다 읽었다.
익히 알려진 바와는 다른 그의 잔인하고도 비겁하며 이기적인 성격이라든가
애플 컴퓨터, 매킨토시에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신제품을 내기까지의 세세한 과정 등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져 있어
밥먹을 때도 테이블 위에 펴놓고 읽으면서 볼 지경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읽는내내 날 약오르게 했던 것은 그의 회사 ‘애플’이
내가 속한 ‘킴벌리 클락’과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포춘 글로벌 500 순위를 살펴보니 2011년 매출기준 애플은 111위인데 비해
킴벌리 클락은 494위로 500대 기업에 겨우 턱걸이를 했다.
순이익만 따지면 애플이 7.6배의 돈을 더 벌어들였다.
설립연도만 따지면 킴벌리 클락이 100년 이상 더 긴 역사를 자랑하지만
현재 두 회사의 차이는 이렇듯 크고 안타깝게도 앞으로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생각한다.
두 회사가 지금의 철학이나 신제품에 대한 컨셉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말이다.
애플은 끊임없이 신기술을 적용하고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해왔다.
그것이 고객에게 가치를 부여해주는 거라면 다소 더 비싸다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혁신적이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다른 제품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내어놓는다면
고객들은 얼마든지 지갑을 열 것이라는 믿음이 회사 내에 튼튼하게 뿌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를 만들 때 아무도 확인해보지 않을 컴퓨터 케이스 안쪽에까지
비싼 돈을 들여 도색을 하고 코팅을 했으며, 그 때부터 지금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나사 하나, 포장지 하나에까지 정성을 들여온 것은 바로 그런 철학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킴벌리 클락은 50년 전 일회용 기저귀라는 아주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았지만
그 이후에는 그다지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한 2005년도 이후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를 시장에 선보였고 맥북에어를 개발하였으며
매년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으며 시리니 앱스토어니 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킴벌리 클락의 하기스는 여전히 그 때의 하기스고,
지금의 크리넥스는 심지어 90년 전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품질은 물론 좋아졌겠지만)
물론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저귀를 쓰고 티슈를 쓰고 생리대를 쓸 것이다.
애플은 몇 년 동안 시장 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순식간에 망할 수 있겠지만
킴벌리 클락은 아마 백 년 뒤에도 거뜬하게 잘 버티고 있을 것이다.
허나 내가 몸담은 회사가 조금은 더 뻗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정적인 회사’를 넘어 ‘혁신적인 회사’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이 깜짝 놀랄 정도의 기저귀를 만들어내고
피부에 닿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크리넥스를
개발해 내며 아예 기존의 카테고리를 넘어서 애플처럼
‘와 이런 제품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원가 1달러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가 10달러를 기꺼이 더 내게끔 만드는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면 일하는 사람들도 좀 더 신나게 일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포춘 500을 보면 킴벌리 클락과 순위가 비슷한 한국 회사가
‘한국 가스공사’ (498위) 인데, 사기업이 이런 공기업보다는 더 드라마틱하고
과감하면서도 멋진 행보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참, 회사에 대한 이런 얘기를 쓰면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요건 킴벌리 클락에 대한 얘기다.
유한킴벌리의 행보는 킴벌리 클락보다는 많이 다르다. 이번에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3위’를 먹기도 했으니 말이다.
...킴벌리 클락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수는 없을... 테지? (한국말이니까)
원가 1달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가 아니라
소비자가 10달러를 기꺼이 더 내게끔 만드는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