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폴 사무실에서 찍은 바깥풍경. 서울이랑 다를바가 없잖아)
아아. 싱가폴 실록을 계속하게 될줄이야. 2010년에 두 달 동안 머물렀었고
그 이후에도 한 번 잠깐 들리기도 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렇게
다시금 싱가폴에 돌아와, 그것도 싱가폴에서 상주하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지난 며칠 새 취업비자도 받고 월급통장도 개설하려고
알아보고 있는데, 2010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새롭고 어색한 기분이다. 뭐가 그리 다르냐 하면...
2010년의 싱가폴은 어쨌거나 내겐 잠시 머무는 '출장지'에 불과했다.
당시 생산현장에서 컨설팅 일을 했었는데 사업장이 싱가폴 서쪽 끌에
위치하고 있어서 근처 분위기는 사실 싱가폴이라기 보다는 말레이시아에 가까웠던 것 갈다.
출퇴근은 렌트카를 타고 했는데 내가 오른쪽에 핸들이 달린 차는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남들이 타는 차를 얻어다녀야 했었다. 운전해준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꽤나 편하긴 했다.
싱가폴에서 유명한 부촌에 있는 콘도에 머무르긴 했었으나
주위에 식당가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근처 마트에서 산 빵이나 간단한 즉석요리로
끼니를 떼우는게 보통이었다. 이런 기억의 편린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결론을 내자면
아무래도 일반적인 싱가포리언의 삶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한달에 렌트비만 500만원이 넘는 콘도를 혼자 쓰고 월 렌트비가 100만원은
가볍게 넘는 렌트카를 타고 다녔으며, 지금 내 연봉으로는 사실상 꿈도 꾸기 힘든 부촌에서
하루에 출장경비 몇 십달러씩 받으면서 돈 걱정 없이, 불편함 없이 편하게 살았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지금은 싱가폴에 있는 동남아 지역 본부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겉으로 보기엔 조금 더 화려해보이긴 한다. 허나 출퇴근은 서울 못잖게
사람이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으며 아침식사는 편의점 빵으로,
저녁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겨우겨우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출장경비가 이곳 직원이 되어 나오지 않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한국보다 40%는 비싼 듯한 물가에는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회사에서의 호텔지원이 종료되면 높은 월세탓에 앞으로 살 생각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평범한 싱가폴 사람의 삶에 더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당연히 2010년 당시의 체류형태가 내게는 훨씬 더 좋긴 하다. 하지만
그때의 호사스러움이 사실 분에 넘치는 거였고, 지금 회사에서의
내 입지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지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렇게 평범한 삶을 살거라면, 왜 굳이 한국을 버리고
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고생하며 살아야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내가 여기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한국에 있는 처자식한테 송금해야 되는
그런 절박한 입장도 아닌데 말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계 기업 입사를 원하고, 해외취업을 꿈꾼다고 들었다.
허나 해외에 있는 외국 회사에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 거라면 뭣하러 정든 고향땅을 버리고 나온단 말인가.
이 말을 내게 돌려주자면,
역시나 난 여기서 '오래 살' 건 아닌 것 같다. 며칠 머물지도 않았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조금은 선명해진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이 연봉으로 다른 동남아 나라에 가서 호강하며 살거나!
둘 중 하나로 가자.
싱가폴 놀러 함 가야겠네. 애들 다끌고..
싱가폴의 그밤이 그립고나, 민폐인줄도 모르고 밤새게 만들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