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이 닥터 사하라 클리닉이었다. 이 병원을 호텔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지척에 두고
지금까지 뭐 때문에 한 시간이 넘게 헤맸단 말인지, 화가 나기보다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떡 벌리고 기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심지도 굳건한 인도 아저씨는
웃음기 하나 없는 사무적인 얼굴로 병원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실수한 것도 아닌, 그저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표정, 그 뿐이었다. 어찌된 노릇인지 따져볼까 하다가 어차피 되지도 않는 대화
시도해서 뭐하겠냐 괜히 싸워봤자 득 될 것도 없다 라는 생각에 그냥 암말 안 하고
차에서 내려 병원까지 걸어갔다.
멀리서 보기에도 아주 작은 병원이었다. 동네 구멍 가게 정도의 크기랄까.
반투명으로 된 유리문을 살짝 밀고 얼굴을 집어넣어 안을 살피니 세 걸음이면
횡단하고도 반 걸음이 남을 아주 좁은 로비와 그 뒤 켠으로
왼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오른쪽에는 조그마한 방이 놓여져 있었다.
정말 마티즈 뒷자석 마냥 작디작은 병원이었는데 그래도 깨끗하게 칠해진 하얀 벽과
이를 밝히는 환한 조명 때문에 그나마 병원 같은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비하면 좀 전의 병원들은 사진 인화용 암실에 가까웠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달까.
오른쪽 방에는 문이 열려 있었는데 얼추 보기엔 책상이 하나 놓여져 있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접수대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익스큐즈 미를 읊으며
들어가니 느긋하게 자리에 기대어 앉은 초록색 사리(인도전통의상)를 입은
한 사십 대 중반쯤 되는 인도 아주머니가 느긋한 눈빛으로 날 예의 그 인도식으로
쳐다보며 반겨준다. 의사인가, 아니면 간호사인가. 일단 말부터 걸어보자.
“아파서 왔는데, 치료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좀 아파보이는 목소리로 나긋하게 물으니 바로 앞에 놓여진 의자에 앉으란다.
의산가 보다,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시키는 대로 하니 하얀 백지를 하나 꺼내
책상 위에 놓고는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라고 묻고는 받아 적기 시작한다.
영어가 자연스럽다. 물론 발음은 ‘왓 캔 아이 헬프 유’가 아니라
인도스럽게 ‘왇 깬 나헤 헬쀼’에 가깝지만 그게 어딘가. 감사할 따름이다.
인도에서는 초등교육부터 학교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로 크게 나뉘어지는데
공립학교는 책상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지저분한 환경에서 바닥에 앉아
벽하고 별로 구분도 안 가는 낡은 칠판을 바라보며 힌디어(인도공용어)로 공부하는 반면
사립학교에서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자켓에 넥타이까지 매고 모든 수업을
영어로 받게 된다. 물론 수업료는 천차만별, 교육의 수준도 하늘과 땅차이.
고로 작금의 인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카스트제도가 아닌
부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이들 사립학교 출신들은 영어가 모두 상당한 수준인데 의사, 변호사
그리고 일반 회사의 높은 지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개 이런 사립학교
출신이라 보면 된다. 이 의사선생님도 그렇게 보이고.
그렇지만 진료실이면 흔히 걸려있는 의사 면허증이라던가 인증서, 졸업장 같은 게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의학서적 한 권 보이지 않으니 살짝 돌팔이 같기도 하다.
허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얼마나 힘들게 찾아온
사하라 클리닉이냔 말이다.
일단 의사 선생님의 상황파악을 도와드리기 위해 업무차 여기서 지내고 있는
외국인이라고 먼저 운을 뗐다. 그랬더니 그냥 끄덕끄덕하고 말 뿐이다.
대만하고 싱가폴에서 치료차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여권 보여달라, 비자가 어디있냐, 현재 주소를 대라, 보험은 있냐,
여기 이 문서의 삼백 가지 항목을 다 채워라, 한국 노래 아는 것 있으면 불러봐라,
옥상에 물 항아리가 스물 여섯개가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파티에서 돌아오기 전
물을 다 채워놓아라는 등 요구사항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여기는 외국인이고 뭐시기고
아무런 신상확인 절차가 없다. 이름은 문성, 국적은 한국, 나이는 서른 둘이라 말하니
그냥 백지 오른쪽 구석에 받아 적고는 아무런 질문도, 대꾸도 없다.
이거 이름은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 쏘제고 브라질에 위치한 알래스카라는 도시에서 왔으며,
가톨릭대학교 불상제조학과와 육군사관학교 발레학과를 나온,
사실은 애 딸린 유부녀다 라고 말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듯한 반응이다.
허나 다행히도 식중독에 걸린 것 같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고생이 잊혀질 만큼
정성스러운 진단을 개시해주었으니, 길이로 보나 형태로 보나 필시 겨드랑이용으로
보이는 체온계를 소독도 하지 않고 무려 입에 오 분 동안이나 물려 놓고는
어디에 누군지 모를 지인과 한참을 즐거이 통화하셔서 나로 하여금 박명수처럼
침을 뚝뚝 흘리게 만들기도 하고 공기주입식 구식 혈압계로 뜬금없이 팔뚝의 혈압을
재기도 했으며 배에 청진기를 대보더니 여기저기 쿡쿡 눌러보기까지 했다.
한국식 진료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 정도면 너무 느긋하긴 해도 돌팔이는 아닌 것 같다.
그런 후 진단결과를 말하는데, 배의 염증이 심한 상태고 이 정도까지 진행되었으면
먹는 약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테니 링거를 좀 맞고 주사도 놔주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내일 아침이면 깨끗하게 낫고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
라는 호언장담까지 보너스로 남겨주었다. 정말 Everything will be fine tomorrow
라고 했는데, 내 살다가 이리 시원하게 예측을 때려주는 의사는 일찌감치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후환이 두려운지 의사들이 조금씩 말을 돌려 말하고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말한 뒤 이걸 안 지키면 다 소용없고 계속 아프면
네 책임이다는 식으로 끝맺음 하곤 하는데 인도에서는 그런 걱정 없는 듯
만병통치약 파는 사람처럼 자신감이 충만하다. 식중독인데도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약사항도 없다. '치료 받은 후 집에 가서 좀 잘 먹어두라'가 전부다.
와 이런 의사 너무 좋다. 치료만 제대로 해준다면 말이다!
그리고는 따라오라고 해서 아까 그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환자용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고 다른 환자는 없었다. 날더러 거기 누우라고
하더니 혼자서 느긋하게 링거액을 조제하고 주사약을 준비한다.
간호사도 없고 간호조무사도 없다. 혼자 다 하는 모양이다. 사실 어찌 보면
살짝 불안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 아줌마가 링거 통에 약 대신
칠성사이다를 넣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러면 내 피엔 이산화탄소가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며 흐르고 흐르겠지.
하지만 도리 없다. 믿을 수 밖에. 호텔에서 추천해준 것으로 봐서
이 병원이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정확하고 제대로 된 병원인 것은 확실하니까.
나는 주삿바늘을 느긋하게 흔들고 있는 느긋한 의사 선생님 면전으로
오른팔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지금까지 뭐 때문에 한 시간이 넘게 헤맸단 말인지, 화가 나기보다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떡 벌리고 기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심지도 굳건한 인도 아저씨는
웃음기 하나 없는 사무적인 얼굴로 병원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실수한 것도 아닌, 그저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표정, 그 뿐이었다. 어찌된 노릇인지 따져볼까 하다가 어차피 되지도 않는 대화
시도해서 뭐하겠냐 괜히 싸워봤자 득 될 것도 없다 라는 생각에 그냥 암말 안 하고
차에서 내려 병원까지 걸어갔다.
멀리서 보기에도 아주 작은 병원이었다. 동네 구멍 가게 정도의 크기랄까.
반투명으로 된 유리문을 살짝 밀고 얼굴을 집어넣어 안을 살피니 세 걸음이면
횡단하고도 반 걸음이 남을 아주 좁은 로비와 그 뒤 켠으로
왼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오른쪽에는 조그마한 방이 놓여져 있었다.
정말 마티즈 뒷자석 마냥 작디작은 병원이었는데 그래도 깨끗하게 칠해진 하얀 벽과
이를 밝히는 환한 조명 때문에 그나마 병원 같은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비하면 좀 전의 병원들은 사진 인화용 암실에 가까웠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달까.
오른쪽 방에는 문이 열려 있었는데 얼추 보기엔 책상이 하나 놓여져 있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접수대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익스큐즈 미를 읊으며
들어가니 느긋하게 자리에 기대어 앉은 초록색 사리(인도전통의상)를 입은
한 사십 대 중반쯤 되는 인도 아주머니가 느긋한 눈빛으로 날 예의 그 인도식으로
쳐다보며 반겨준다. 의사인가, 아니면 간호사인가. 일단 말부터 걸어보자.
“아파서 왔는데, 치료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좀 아파보이는 목소리로 나긋하게 물으니 바로 앞에 놓여진 의자에 앉으란다.
의산가 보다,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시키는 대로 하니 하얀 백지를 하나 꺼내
책상 위에 놓고는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라고 묻고는 받아 적기 시작한다.
영어가 자연스럽다. 물론 발음은 ‘왓 캔 아이 헬프 유’가 아니라
인도스럽게 ‘왇 깬 나헤 헬쀼’에 가깝지만 그게 어딘가. 감사할 따름이다.
인도에서는 초등교육부터 학교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로 크게 나뉘어지는데
공립학교는 책상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지저분한 환경에서 바닥에 앉아
벽하고 별로 구분도 안 가는 낡은 칠판을 바라보며 힌디어(인도공용어)로 공부하는 반면
사립학교에서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자켓에 넥타이까지 매고 모든 수업을
영어로 받게 된다. 물론 수업료는 천차만별, 교육의 수준도 하늘과 땅차이.
고로 작금의 인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카스트제도가 아닌
부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이들 사립학교 출신들은 영어가 모두 상당한 수준인데 의사, 변호사
그리고 일반 회사의 높은 지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개 이런 사립학교
출신이라 보면 된다. 이 의사선생님도 그렇게 보이고.
그렇지만 진료실이면 흔히 걸려있는 의사 면허증이라던가 인증서, 졸업장 같은 게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의학서적 한 권 보이지 않으니 살짝 돌팔이 같기도 하다.
허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얼마나 힘들게 찾아온
사하라 클리닉이냔 말이다.
일단 의사 선생님의 상황파악을 도와드리기 위해 업무차 여기서 지내고 있는
외국인이라고 먼저 운을 뗐다. 그랬더니 그냥 끄덕끄덕하고 말 뿐이다.
대만하고 싱가폴에서 치료차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여권 보여달라, 비자가 어디있냐, 현재 주소를 대라, 보험은 있냐,
여기 이 문서의 삼백 가지 항목을 다 채워라, 한국 노래 아는 것 있으면 불러봐라,
옥상에 물 항아리가 스물 여섯개가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파티에서 돌아오기 전
물을 다 채워놓아라는 등 요구사항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여기는 외국인이고 뭐시기고
아무런 신상확인 절차가 없다. 이름은 문성, 국적은 한국, 나이는 서른 둘이라 말하니
그냥 백지 오른쪽 구석에 받아 적고는 아무런 질문도, 대꾸도 없다.
이거 이름은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 쏘제고 브라질에 위치한 알래스카라는 도시에서 왔으며,
가톨릭대학교 불상제조학과와 육군사관학교 발레학과를 나온,
사실은 애 딸린 유부녀다 라고 말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듯한 반응이다.
허나 다행히도 식중독에 걸린 것 같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고생이 잊혀질 만큼
정성스러운 진단을 개시해주었으니, 길이로 보나 형태로 보나 필시 겨드랑이용으로
보이는 체온계를 소독도 하지 않고 무려 입에 오 분 동안이나 물려 놓고는
어디에 누군지 모를 지인과 한참을 즐거이 통화하셔서 나로 하여금 박명수처럼
침을 뚝뚝 흘리게 만들기도 하고 공기주입식 구식 혈압계로 뜬금없이 팔뚝의 혈압을
재기도 했으며 배에 청진기를 대보더니 여기저기 쿡쿡 눌러보기까지 했다.
한국식 진료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 정도면 너무 느긋하긴 해도 돌팔이는 아닌 것 같다.
그런 후 진단결과를 말하는데, 배의 염증이 심한 상태고 이 정도까지 진행되었으면
먹는 약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테니 링거를 좀 맞고 주사도 놔주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내일 아침이면 깨끗하게 낫고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
라는 호언장담까지 보너스로 남겨주었다. 정말 Everything will be fine tomorrow
라고 했는데, 내 살다가 이리 시원하게 예측을 때려주는 의사는 일찌감치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후환이 두려운지 의사들이 조금씩 말을 돌려 말하고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말한 뒤 이걸 안 지키면 다 소용없고 계속 아프면
네 책임이다는 식으로 끝맺음 하곤 하는데 인도에서는 그런 걱정 없는 듯
만병통치약 파는 사람처럼 자신감이 충만하다. 식중독인데도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약사항도 없다. '치료 받은 후 집에 가서 좀 잘 먹어두라'가 전부다.
와 이런 의사 너무 좋다. 치료만 제대로 해준다면 말이다!
그리고는 따라오라고 해서 아까 그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환자용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고 다른 환자는 없었다. 날더러 거기 누우라고
하더니 혼자서 느긋하게 링거액을 조제하고 주사약을 준비한다.
간호사도 없고 간호조무사도 없다. 혼자 다 하는 모양이다. 사실 어찌 보면
살짝 불안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 아줌마가 링거 통에 약 대신
칠성사이다를 넣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러면 내 피엔 이산화탄소가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며 흐르고 흐르겠지.
하지만 도리 없다. 믿을 수 밖에. 호텔에서 추천해준 것으로 봐서
이 병원이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정확하고 제대로 된 병원인 것은 확실하니까.
나는 주삿바늘을 느긋하게 흔들고 있는 느긋한 의사 선생님 면전으로
오른팔을 조심스레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