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클 덴탈 클리닉을 나온 후 기사는 닥터 사하라 클리닉은 클리어하게
잊어버렸는지 멀리 시내 중심가로 차를 몰아갔다. 난 인신매매 당한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여자아이처럼 차 뒷자리에서 걱정스런 마음으로 차창 밖의
불빛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15분 정도 뒤 차는 간판이 인도어로 되어 있어
도무지 뭔 말인지 읽을 순 없지만 빨간 십자가가 붙어 있어 대충 병원이겠거니 여겨지는
오래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기사가 성큼성큼 먼저 앞장서서 병원 문 앞까지
가더니 내게 들어가보라고 했다. 단층이지만 대여섯 개의 진찰실/주사실 등이 갖춰진
제법 큰 곳이었다. 너무 늦어서인지 환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접수대에서
한 팔십은 되어 버리는 회색 머리의 인도 할머니가 피골이 상접한 골골한 모습으로
넌 대체 뭐냐 는 식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치료 좀 받으러 왔는데요’
라고 먼저 말할 때까지 계속 고까운 눈으로 날 계속 노려보고 있어 이거 내가
환자분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아주머니
내가 치료받으러 온 것이 아주 못마땅했는지, 아님 저녁으로 먹은 카레에
소금이 너무 들어가 기분이 상했는지 내 말을 듣고도 뼈다귀 같은 앙상한 팔을 휘저으며,
그리고 밭이랑 같은 이마의 주름을 더 깊숙이 구기며 ‘우리 신문 안 받아보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나가’ 라고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인도말이라 알아들을리
만무하지만 대략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몸만 안 아팠어도
‘아 그래요. 그럼 다음에 다시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나올 건데
밤은 점점 더 깊어지는 이 시점에서 그냥 꼬랑지 빼고 순순히 회군할 수는 없어
60시간 금식으로 앙상해진 팔로 팔짱을 끼며, 나름대로 눈을 화끈하게 부라리며
이렇게 따지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쏘리?”
못 알아듣겠다는 소리다. 이런 정황을 예상이나 했는지 우리 에너지 넘치는
기사 아저씨가 뒤에서 갑자기 등장하더니 아주머니에게
‘할머니가 우리 신문이 얼마나 유명한지 알기나 해요?! 한 달만 받아봐요.
자전거 드릴 테니까’ 라는 식으로 인도말로 툴툴거리며 얘기하더니
내게 병원측의 공식의사를 무려 영어로 이렇게 대변해주었다.
“에브리 닥터 $@$%@@ 오퍼레이션 $#$@#@% 썰띠 미닛 웨이팅 $@#$@%^&%&*”
의사들이 수술에 들어가서 지금 당장 진료를 받을 순 없으니 삼십 분만 기다려라,
라는 말의 내용보다 내가 이따위 영어를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울컥하며
무엇보다 분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지.
병원 대기실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우리 나라 고속도로 대합실에서 볼 수 있는
성의없이 만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의자 십여 개 중
반 정도는 등받이 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병원 전체의 조명도 딱 고속도로
화장실 수준이었다. 허나 이런 곳에서라도 치료받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마음을 다스리며 수술을 마치고 돌아올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십 분 지나니 문득 이런 불안감이 돋아났다. ‘인도 사람이 말하는 삼십 분이
정말 삼십 분인 적이 있었던가’. 아아. 이거 자칫하면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인도 사람 터번처럼 머리를 휘감았다. 이거 안 되겠는데?
이런 내 사정을 어찌 짐작했는지 병원 문가에서 누가 날 ‘써 써 (선생님)’ 하며 부른다.
돌아보니 기사다. 따라 나오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래와 같은 고급영어로 이유를
잘 설명해주었다.
“썰티 미닛 $@;@%@ 투 롱 %$$%# 어나더 하스피떨 %%@%$@”
딱딱 알아듣고 있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그새 어떻게 알아봤는지 도보로
이삼 분 거리의 새로운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렇게 끌려 다니다가
병이 더 도질 것 같다는 불안이 싹텄다. 병원은 두번 째 병원보다는 작았지만
스파클 덴탈 클리닉보다는 큰 곳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정상인지 아까 거기가
비정상적이었는지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인도인이 십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나를 인도식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며 반겨주었다.
여기서 인도식으로 쳐다보기란 바라보는 대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지들이 질릴 때까지 사람 얼굴을 쳐다 본 뒤 머리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훑어 내려가며
온 몸을 스캔하고, 그 다음에 다시 얼굴을 쳐다 본 후 슬슬 지겹다 싶으면 관찰을 관두고
자기 일로 돌아가는 인도인들의 외국인 바라보는 습성을 말한다. 처음 당할 땐
그저 당황스러웠지만 조금 여유가 있어진 다음엔 나도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싸움을 하기도 했는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구 12억의 인도인들은 자기들
눈 크기의 반도 채 안 되는 나의 눈빛 따윈 가소롭다는 듯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볼일을 계속하길래 결국 먼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고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있는 상태다. 아무튼 그런 한여름 에어컨 안 나오는
옥탑방 실내공기처럼 답답하고 끈적한 눈빛들을 받으며 접수대까지 걸어가니
거기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날 따라온 기사에게 ‘저기 우리 신문 벌써 여섯 개
받고 있으니까 곱게 말할 때 그냥 돌아가세요’ 하는 식으로 제법 점잖게
딱 한 줄의 문장을 인도말로 담담히 설파했고, 이에 감화감동을 받았는지 기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고개를 돌려 이렇게 말했다
"렛츠 고"
다시 오육 분을 걸어 차로 돌아갔다. 혹시 인도에서는 식중독 환자를
병이 다 나을 때까지 걷고 또 걷게 해서 낫게 하는 민간요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이를 혹시‘닥터 사하라’ 요법이라 칭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뒤를 이었는데
어쨌거나 말도 안 통하는 이 사람과 논쟁할 수도 없어 조용히 차까지 총총 잘도 따라갔다.
기사는 다시 시동을 걸더니 차를 몰고 밖 큰 도로로 나갔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왜 저러냐 싶어 지켜보고 있자니, 이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떤 특정한 병원의 위치를 묻는게 아니라 여기 혹시 근처에 병원 없어요 하고
묻는 투다. 그걸 보고 있자니 식중독이 정신병으로 승화될 것 같았다. 식중독이 올라와서
뇌까지 중독될 것 같았다. 세 번째 사람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하자 참다 못해
기사에게 말했다. 됐으니 호텔로 돌아가자고. 어차피 아파 죽을 것 같아
병원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여행의 고생 예방차 가려고 했던 것이니
이렇게 길거리에서 밤새도록 고고학 탐사하며 돌아다닐 바엔 호텔로 돌아가는 게 낫다
싶었던 것이다. 기사는 뭐라뭐라 인도말로 답하더니 핸들을 꺾어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호텔이 있는 거리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7시가 훌쩍 넘었다. 그런데 호텔로 가는
사거리에서 이 아저씨, 좌회전을 해야되는데 우회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100미터 정도 가더니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는 저기로 가보라고 했다.
눈을 들어 간판을 보니 영어로 ‘닥터 사하라 클리닉’이라고 되어 있었다.
한동안, 정말 할 말을 잃고 멍해진 정신으로 간판만 하염없이 쳐다 볼 뿐이었다.
대체 이거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잊어버렸는지 멀리 시내 중심가로 차를 몰아갔다. 난 인신매매 당한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여자아이처럼 차 뒷자리에서 걱정스런 마음으로 차창 밖의
불빛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15분 정도 뒤 차는 간판이 인도어로 되어 있어
도무지 뭔 말인지 읽을 순 없지만 빨간 십자가가 붙어 있어 대충 병원이겠거니 여겨지는
오래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기사가 성큼성큼 먼저 앞장서서 병원 문 앞까지
가더니 내게 들어가보라고 했다. 단층이지만 대여섯 개의 진찰실/주사실 등이 갖춰진
제법 큰 곳이었다. 너무 늦어서인지 환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접수대에서
한 팔십은 되어 버리는 회색 머리의 인도 할머니가 피골이 상접한 골골한 모습으로
넌 대체 뭐냐 는 식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치료 좀 받으러 왔는데요’
라고 먼저 말할 때까지 계속 고까운 눈으로 날 계속 노려보고 있어 이거 내가
환자분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아주머니
내가 치료받으러 온 것이 아주 못마땅했는지, 아님 저녁으로 먹은 카레에
소금이 너무 들어가 기분이 상했는지 내 말을 듣고도 뼈다귀 같은 앙상한 팔을 휘저으며,
그리고 밭이랑 같은 이마의 주름을 더 깊숙이 구기며 ‘우리 신문 안 받아보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나가’ 라고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인도말이라 알아들을리
만무하지만 대략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몸만 안 아팠어도
‘아 그래요. 그럼 다음에 다시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나올 건데
밤은 점점 더 깊어지는 이 시점에서 그냥 꼬랑지 빼고 순순히 회군할 수는 없어
60시간 금식으로 앙상해진 팔로 팔짱을 끼며, 나름대로 눈을 화끈하게 부라리며
이렇게 따지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쏘리?”
못 알아듣겠다는 소리다. 이런 정황을 예상이나 했는지 우리 에너지 넘치는
기사 아저씨가 뒤에서 갑자기 등장하더니 아주머니에게
‘할머니가 우리 신문이 얼마나 유명한지 알기나 해요?! 한 달만 받아봐요.
자전거 드릴 테니까’ 라는 식으로 인도말로 툴툴거리며 얘기하더니
내게 병원측의 공식의사를 무려 영어로 이렇게 대변해주었다.
“에브리 닥터 $@$%@@ 오퍼레이션 $#$@#@% 썰띠 미닛 웨이팅 $@#$@%^&%&*”
의사들이 수술에 들어가서 지금 당장 진료를 받을 순 없으니 삼십 분만 기다려라,
라는 말의 내용보다 내가 이따위 영어를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울컥하며
무엇보다 분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지.
병원 대기실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우리 나라 고속도로 대합실에서 볼 수 있는
성의없이 만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의자 십여 개 중
반 정도는 등받이 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병원 전체의 조명도 딱 고속도로
화장실 수준이었다. 허나 이런 곳에서라도 치료받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마음을 다스리며 수술을 마치고 돌아올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십 분 지나니 문득 이런 불안감이 돋아났다. ‘인도 사람이 말하는 삼십 분이
정말 삼십 분인 적이 있었던가’. 아아. 이거 자칫하면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인도 사람 터번처럼 머리를 휘감았다. 이거 안 되겠는데?
이런 내 사정을 어찌 짐작했는지 병원 문가에서 누가 날 ‘써 써 (선생님)’ 하며 부른다.
돌아보니 기사다. 따라 나오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래와 같은 고급영어로 이유를
잘 설명해주었다.
“썰티 미닛 $@;@%@ 투 롱 %$$%# 어나더 하스피떨 %%@%$@”
딱딱 알아듣고 있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그새 어떻게 알아봤는지 도보로
이삼 분 거리의 새로운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렇게 끌려 다니다가
병이 더 도질 것 같다는 불안이 싹텄다. 병원은 두번 째 병원보다는 작았지만
스파클 덴탈 클리닉보다는 큰 곳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정상인지 아까 거기가
비정상적이었는지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인도인이 십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나를 인도식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며 반겨주었다.
여기서 인도식으로 쳐다보기란 바라보는 대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지들이 질릴 때까지 사람 얼굴을 쳐다 본 뒤 머리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훑어 내려가며
온 몸을 스캔하고, 그 다음에 다시 얼굴을 쳐다 본 후 슬슬 지겹다 싶으면 관찰을 관두고
자기 일로 돌아가는 인도인들의 외국인 바라보는 습성을 말한다. 처음 당할 땐
그저 당황스러웠지만 조금 여유가 있어진 다음엔 나도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싸움을 하기도 했는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구 12억의 인도인들은 자기들
눈 크기의 반도 채 안 되는 나의 눈빛 따윈 가소롭다는 듯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볼일을 계속하길래 결국 먼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고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있는 상태다. 아무튼 그런 한여름 에어컨 안 나오는
옥탑방 실내공기처럼 답답하고 끈적한 눈빛들을 받으며 접수대까지 걸어가니
거기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날 따라온 기사에게 ‘저기 우리 신문 벌써 여섯 개
받고 있으니까 곱게 말할 때 그냥 돌아가세요’ 하는 식으로 제법 점잖게
딱 한 줄의 문장을 인도말로 담담히 설파했고, 이에 감화감동을 받았는지 기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고개를 돌려 이렇게 말했다
"렛츠 고"
다시 오육 분을 걸어 차로 돌아갔다. 혹시 인도에서는 식중독 환자를
병이 다 나을 때까지 걷고 또 걷게 해서 낫게 하는 민간요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이를 혹시‘닥터 사하라’ 요법이라 칭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뒤를 이었는데
어쨌거나 말도 안 통하는 이 사람과 논쟁할 수도 없어 조용히 차까지 총총 잘도 따라갔다.
기사는 다시 시동을 걸더니 차를 몰고 밖 큰 도로로 나갔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왜 저러냐 싶어 지켜보고 있자니, 이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떤 특정한 병원의 위치를 묻는게 아니라 여기 혹시 근처에 병원 없어요 하고
묻는 투다. 그걸 보고 있자니 식중독이 정신병으로 승화될 것 같았다. 식중독이 올라와서
뇌까지 중독될 것 같았다. 세 번째 사람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하자 참다 못해
기사에게 말했다. 됐으니 호텔로 돌아가자고. 어차피 아파 죽을 것 같아
병원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여행의 고생 예방차 가려고 했던 것이니
이렇게 길거리에서 밤새도록 고고학 탐사하며 돌아다닐 바엔 호텔로 돌아가는 게 낫다
싶었던 것이다. 기사는 뭐라뭐라 인도말로 답하더니 핸들을 꺾어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호텔이 있는 거리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7시가 훌쩍 넘었다. 그런데 호텔로 가는
사거리에서 이 아저씨, 좌회전을 해야되는데 우회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100미터 정도 가더니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는 저기로 가보라고 했다.
눈을 들어 간판을 보니 영어로 ‘닥터 사하라 클리닉’이라고 되어 있었다.
한동안, 정말 할 말을 잃고 멍해진 정신으로 간판만 하염없이 쳐다 볼 뿐이었다.
대체 이거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