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찍은 인도의 거리. 저렇게 전통의상을 많이들 입고 다닌다)
EIE(Economist Intelligence Unit)라는 기관이 이번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것저것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호주의 멜버른이라고 한다.
호주는 가본 적이 없어 모르겠는데, 일단 아시아 나라를 위주로 전체 순위를 살펴보았다.
- 일본 도쿄 18위
- 홍콩 31위
- 싱가폴 51위
- 한국 서울 58위
- 대만 타이뻬이 61위
- 중국 베이징 72위
- 중국 샹하이 79위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78위
- 태국 방콕 102위
- 인도 뭄바이 116위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19위
- 베트남 호치민 124위
멜버른이 1등이고 뉴욕이 50위 권인 걸 보면 경제력으로 순위를 매긴 건 아닌 듯한데,
아시아 나라만큼은 경제기준으로 일괄 정렬했다는 느낌이다. 그것말고 도쿄와 서울이
저리 차이날게 뭐람. 물가나 대중교통 같은 걸 따져보자면 오히려 서울이 나은 면도
적지 않을텐데 말이다.
아무튼 도쿄를 제외한 위의 모든 도시들에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머물러 본
개인적 소회를 적어보자면, 유물론자 취급받을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어쨌거나 돈만 있다면
어디든지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물가 비싼 나라에서는
그 돈이 좀 많이 필요하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조금 적게 요구된다는 차이 밖에는 없달까.
저기서 가장 밑에 처해있는 호치민이나 자카르타에서도 돈 있는 사람들은 정말 편하게
'잘' 산다. 지난 번 호치민 방문했을 때 영어통역하는 친구들과 함께 칵테일 한 잔에
7-8천원 하는 라틴바에 갔었는데 동행했던 이들에 따르면 거기 우글대는 잘 빼입은
현지인들의 대부분은 꽤나 잘 사는 사람들이고 개중 많은 수는
'내일 출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고 하더라. 베트남이면 다들 머리에
삿갓쓰고 헐벗은 스쿠터 타고 다닐까라 생각하면 크나큰 오해다.
(그 바 앞에는 번드르르한 수입 오토바이들이 늘어서 있더랬다)
119위를 자랑하는 자카르타에서도 지난 번 백화점 돌아다니다가 제법 괜찮아 보이는
일식 돈까스 집에 가서 세트메뉴 하나 먹고 나왔는데 한국돈 2만원이 넘게 나와
화들짝 후회한 적이 있다. 전용 운전기사 한달 월급이 10~15만원 사이라는 자카르타에서도
이런 레스토랑은 백화점에서 차일 정도로 널렸다는 말이다.
위의 도시 중 회사 돈이 아닌 내 돈(+부모님 돈)으로 온전히 살아야 했던 도시가
딱 한군데 있는데 그게 한국이란 나라의 '서울'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도시는 내게
'가장 살기 힘든 도시'로 기억된다. 그 먹고 살기 힘들었던 나날들이여.
하지만 저 살기 힘들다는 100위권 밖 도시들에서는 회사가 마련해준 좋은 호텔과
매일 출퇴근 시켜주는 기사의 대접을 받으며 서울에서보다 몇 배는 편하게 '잘' 살았으니
결국 상대적인 거다. 그 상대성을 결정짓는 치명적 요소가 바로 돈이라는 것이
좀 씁쓸한 노릇이긴 하지만 말이다.
2011년, 인도 푸네에서, http://WWW.MOON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