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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와 밥과 인도식 빵 '자빠띠'. 보기엔 별로라도 맛은 중독적이다)

장기 해외출장도 적성에 맞아야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먼저 이국 땅에서의 외로움 따위 우습다 코웃음 치며 벽이나 냉장고 하고도
족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드넓은 아량이 필요하고, 어디든 좋다, 누구든 좋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고, 여권 스탬프가 뭐라 지껄이든 내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시다
식의, 돈키호테에게 니킥을 날릴 뻔뻔함으로 점철된 우람한 삶의 태도도 요구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은 어떠한 로컬 음식도 폭풍처럼 먹어 치우는
고독한 혓바닥과 늠름한 위장이 아닐까 한다. 현지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면
익숙한 패스트푸드만을 추구함으로써 초래되는 건강에의 지장과
먹기 편한, 하지만 외국에서는 비싼 편인 한식, 일식에만 일관함으로써 야기되는
지갑사정의 지장으로 인해 몸과 재정이 녹슬어 가기 십상이며,
이를 차치한다 더라도 ‘우리 나라 음식 먹고 감히 인상을 찌푸리다니’ 혹은
‘기껏 대접해줬더니 살짝 맛만 보고는 손도 안 대다니’하는 안 좋은 인식을
현지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업무의 심각한 장애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으로 복 받은 것이, 지금껏 어느 나라에서도 현지 음식으로
고생한 적이 없다. 중국의 정체 모를 기름진 음식도 대만의 샹차이 가득 들어간
독한 음식들도 삼십 년 동안 내내 그것만 먹은 양 잘도 삼켜댔고,
태국의 그 맵고 신 음식들은 진심 어린 감탄을 토해내며 아주 행복하게 먹어댔으며,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의 맛대가리 없는 할랄 음식(예 – 브리아니) 또한 기꺼이 해치웠다.
그런 내게 인도의 빵요리와 카레 정도의 '쉬운 음식'은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꺼이 먹을만하다. 덕분에 며칠 안 되었지만 벌써 현지인과 동화되어 매끼니
즐거운 식생활을 하고 있는 중인데, 너무 잘 먹어대니 다들 어찌나 흐뭇해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아직 손으로 카레밥을 비벼 집어 삼킨 후 손가락을 쪽쪽 빠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는데 여기에 이르면 아마 여기 현지 직원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쓰고 보니 장기 해외출장 생활, 쉬운게 아니구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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