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도전'과 '나는 가수다'만큼은 동남아에서도 꼭 챙겨보는 나인데,
나는 가수다는 세간의 평처럼 날이 가면서 긴장감과 신선함,
그리고 이에 연유한 총체적인 재미까지 예전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여전히 볼만은 하지만 임재범, 김연우가 나올 때처럼
방송시간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를 꼽아보자면 경쟁에서 승리하는 길이
획일화된 나머지 시청자로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뻔한 패턴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대감과 흥분감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세션 등을 동원해 볼거리를 제공한 후, 후반부에 현란한 고음처리로
듣는 이들의 귀를 자극시키는, 이른바 '승리공식'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은 대중매체에서 다뤄진 바 있으니 여기서는 차치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 외에 심리학과 관련한 또 하나의 승리공식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바로 '인지부조화 이론'에 근거한 관중 동원이다.
그간의 윤도현 밴드, 그리고 지난 주의 자우림이 이를 확연히 보여주었는데,
관객을 부추겨 같이 공연에 참가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가장 쉬운 살아남는
비법이라는 소리다. 노래 중간에 가수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가수의 리드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그러면 처음에는 따라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도
분위기상 어느 정도 동참을 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 사람에게 있어 '나만 집단에서
벗어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은 너무도 피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같이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면 투표 때 아주 재밌는 현상이 벌어진다.
자기가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른 가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까지 치며 목청껏 따라한 가수가 탈락될만큼 별로였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에 동참한 자신까지도 잘못된 판단/행동을 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므로 설혹 다른 가수의 노래가 더 좋고, 더 잘 불렀다고 생각하더라도
자신이 동참했던 공연을 투표 때 찍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위와 인식의 간극, 즉 인지부조화의 간극을 메꾸려는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이다. 보통 우리는 인간의 인식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 역, 즉 인간의 행동이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성립한다는 것이
인지부조화 이론의 핵심이다. 윤도현 밴드는 지금까지 이 인지부조화를 본의든,
본의 아니게든적절하게 이용함으로써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는 몇 주전 관객을 꽤나 오랜 시간 공연에 동참하게 했던 '빙글빙글' 공연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런데 지난 주, 그들은 별안간 조금은 얌전한 스타일로 전환하여
그간의 관중호응유발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이에 반해 방송에서는 편집되었지만
새로 등장한 록밴드 자우림은 관객들을 남녀 반으로 나누어 화음을 넣게 하는 등
제법 긴 시간 동안 관객들과 노래를 같이 불렀다.
결과는? 자우림 1등, 윤도현밴드 7등.
자우림은 노래 중 삑사리를 두 번이나 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이런 인지부조화 이론은 순위를 결정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가수다 내에서 의미있게 기능하고 있으니 한 번 관심있게 지켜보시길.
그런데 이런 공식들이 자꾸만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면 초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프로그램은 점점 더 식상해질 것이다. 가수만 바뀌는 게 아니라 포맷의 변환이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용필이나 이승철, 서태지를
데려다놓는다 할 지라도 시청률의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