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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판매용 마네킹. 이건 분명 외국관광객용이다. 앞머리가 저렇게 나오면 안 되거든)

동남아로 넘어오기 전에는 이슬람교도들, 즉 무슬림과 가까이 지낸 적이 없었다.
아예 말 한 번 섞어본 적조차 없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외국인 포함해서
10만명이 넘는 무슬림이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 중 하나와 만날 인연은
박복한 탓인지 없었나 보다. 하지만 무슬림에 대한 얘기는 어려서부터 들을 수 있었으니
방송 매체도 아니고 책에서도 아닌 주로 교회에서였다. ‘이슬람 선교’는 교회 혹은
교파마다 우선 순위는 다를지라도 한국 교회의 지상과제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김선일씨 사건이라던가, 샘물교회 사건은 표면상으로는 한국인과 무슬림과의 갈등으로
다뤄지기도 하였으나 사실 이슬람 선교를 향한 한국 교회의 의지가 무슬림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일들 아니였던가. 나 역시 기독교인이다 보니 이러한 일들을 통해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 관심의 대부분은 앞에 열거한 사건들이나
911테러로부터 비롯된, 그들에 대한 위화감 혹은 두려움으로 점철된 것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싱가폴에 와서 처음 이름에 ‘무함메드’, ‘압둘라’가 붙은 무슬림들과 만나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라는 본격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이렇게 머물고 있기도 하다. 다행히도 내 주위에는 다들 친절하고 착한 무슬림 뿐이고,
세 나라 모두 타종교가 기꺼이 허락되는지라 크게 불편함은 없다. 회사 식당에서
식사기도를 하고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도 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간의 체류를 통해 하나 강하게 자리 잡은 생각이 있었으니 -

‘과연 이 사람들을 선교를 통해 개종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중동에 비해서 엄격함이 덜한 동남아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독하게들 믿는다.
하루에 다섯 번씩 꼬박꼬박 기도하고, 맥주 같은 것은 입에도 대지 않고
할랄 음식이 아니면 빙긋이 미소를 짓지만 철저하게 사양하고
금요일 오후면 열일 제쳐두고 모스크로 간다. (물론 예외도 봤지만 대단치 않았다)
그 생활의 엄격함만 따지자면 십계명조차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나와 비할 바가
아니다. 대를 이어 평생을 이슬람교를 믿어온 사람들이고, 그 규율 자체가 무척이나
엄하며,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에선 개종하면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 한다.
쉽게 바꿀 믿음이 아니라는 거다.

이건 마치 누군가가 내게 와서 네 이름을 ‘문성’에서 ‘사쿠라기 하나미치’로 바꾸고
한복 대신 기모노를 입은 후 가족과 생이별한 채 다다미방에서 살으라는 것과 같다.
아무리 그를 통해 얻을 이점이 많다 해도 그리 간단히 바꿀 일은 아니라는 거다.
빈 방이라면 새로운 가구들로 채우기가 어렵잖다. 하지만 주인이 귀히 여기는
가구들이 이미 가득 찬 집에 새 가구를 들여놓는 것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동남아에 간다고 했더니 아는 분이 농담으로 전도라도 좀 하고 오라고 하셨다.
한국에서도 전도 못하는 내가 여기서 할 수 있겠느냐 웃으며 넘겼지만 막상 와서 보니
이건 뭐 선교단체나 대형교회가 단단히 채비를 하고 와도 될까 말까 할 정도다.
몇몇 혈기 넘치는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가서 봉사활동 좀 해주고, 파티 같은 것
한다고 그 믿음을 뒤집을 사람들은 아니다라는 소리다.

답은 모르겠다. 인터넷 상으로 요즘 모질게 욕 얻어 먹고는 있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기독교의 핵심가치는 진리를 세상 끝까지 전하는 것이고,
그 세상의 3분의 1정도는 무슬림으로 차 있으니 기독교는 그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게 기독교다. 하지만 부디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현명한 접근방법을 택함으로써
샘물교회 건과 같은 사태, 혹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십자군전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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