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주변에 나붙은 플래카드. 그만큼 자카르타에 한국사람이 많다는 소리되겠다)
요 아래 말레이시아 소녀의 쪽지와 사장님의 메시지 덕분에 가뜩이나 자카르타 도심만큼
체증을 빚고 있는 내 머리 속에 생각의 고리를 하나 더하게 되었는데,
새삼 배우게 된 것은 타인에게 주는 영향력은 내가 그들에게 전하는 무언가의
절대적인 크기, 무게, 가치보다도 상대방이 내게 기대하는 바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가 내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면
작은 것만으로도 – 내가 쪽지 하나에 싱글벙글해 진 것처럼 –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미 더 많은 것, 좋은 것, 귀한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 엔간해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에 회사에서 이런저런 발표를 며칠 동안 연달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첫 번째 발표를 SM 엔터테인먼트 파리공연 하듯 잘 해버려
끝난 후 사람들이 말굽 소리를 내며 두두두 다가와 저마다 악수 청하고 어깨 두드리며
칭찬해주는 경우엔 똑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발표는 반응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 항상 그랬다. 먼젓번 발표로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 즉 그들이 내밀고 있는
그릇의 크기가 커진 상태라 동일한 양과 질의 내용물이라 할지라도
‘이번엔 그릇을 넘치도록 채우지 못했음’이라 인식되는 것이다.
반대로 첫 번째 발표가 영 시원치 않았을 경우에는 항상 두 번째 발표에서 기대 이상의
좋은 반응을 보곤 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한 발표가 전자였고 지난 주 인도네시아에서
한 발표가 후자에 가까웠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남녀 사이의 만남이라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헤겔의 즉자적대자,
칸트의 실천이상비판,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 이상으로 난해할 수밖에 없다.
(내가 써놓고도 뭔 소린지 모르겠네) 초반 서로를 향한 기대가 낮을 때는
아주 작은 것만으로 감탄하고 뭉클해하며 요즘 유행하는 다금바리 인형처럼
화사하게 웃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니 특별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당연시 여기기 시작하고, 많이 먹어 늘어진 위처럼 자신의 넓어진 그릇은
생각도 않은 채 예전만큼 가득히 채워주지 않는 상대에 대해 분노와 불만이
적당히 버무려진 ‘당신, 사랑이 변했군요’와 같은 산소결핍을 일으키는 멘트를
면전에 살포하거나 혹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혼자 꾸역꾸역 하루 세 끼 정량으로 복용하다가
끝내는 (1) 아 이거 도저히 못 참겠다 하며 갈라서거나 혹은
(2) 하는 수 없지 내가 참고 살아야지 하며 견디는 경우를 택하고 마는 것이다.
참으로 뻔하고도 진부한 감정의 흐름 곡선이지만 아직껏 이 뻔한 물살에서
자유로운 커플들을 주위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답은 간단하다. 배우자가 되었든, 회사 사람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지 간에
다른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그들을 향한 나의 기대가, 그 그릇이
커지지 않도록 주의해가면서, 반대로 커가는 그들의 나를 향한 기대를
대화와 타협에 의거하여 적당히 조율해감과 동시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이를 채워주면 되는 것이다.
......뭐 말은 쉽게 했지만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걸 누가 할 수 있으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