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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망고와 코코넛 우유, 그리고 밥을 섞어 먹는다. 정말 신비로운 맛이다. 잊지 못할 맛이다)

태국에서 받은 가장 강렬한 인상이라면 삶에 대한 사람들의 느긋한 태도이다.
몇 개월을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참으로 여유롭게 산다는 인상을 받았다.  돈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무엇을 해도 꼭 시간을 맞춰 해야 된다, 빨리 해야 된다는 분위기는
보기 힘들었으며, 도로에서 누가 갑자기 끼어들기를 해도 우리 나라에서처럼
불같이 화를 내며 맹렬히 경적을 울린다던가 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다들 어느 구석에 박혀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차에서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날 보며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해불가'의 반응을 쉽게 접할 수 있기도 했다.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집을 가지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고 들었으며,
특히 방콕 같이 비싼 곳이 아니라면 마당 넓은 주택에 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우연인지 몰라도 태국 킴벌리 클락크의 경우에는 사장님에서부터 공장장,
생산부서장 등이 다들 밴드 경험이 있었고 아무 준비 없이도 기타 빼들고
몇 곡은 우습게 연주하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쉽지 않았던 삶의 여유, 마음의 여유였다.

따뜻한 열대 지방의 날씨 때문일 수도 있을 거고,  
제국주의 열강에 지배당하지 않았다는 역사가 주는 여유로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넓은 땅덩어리와 풍족한 농수산 자원이 준 풍요로움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한국이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이렇게 빨리 발전한 이유는 이 느긋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절실함. 떼놈들, 왜놈들 등쌀에 그만 시달리고 싶다는 절박함,
언제 김일성이가 땡끄 밀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있는 자들의 거만함과 이에 대한 분노가 초래한 신분상승의 욕구,
일하지 않고서는 먹고 살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 비롯된 습관적 성실성 등이
느긋함이라는 요소가 국민들 사이에 자리잡지 못하게끔 만든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동남아 국가들과 한국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한국은 더욱 잘 사는 나라가 되고, 여전히 동남아 국가는 후진국이라 분류된다.
그 차이를 여기와서 내 눈으로 생생히 보았다. 삼성, LG가 전자제품으로 이름을 날리고,
현대자동차가 나날이 더 수출을 늘여가고 있는 지금, 여전히 태국의 가장 큰
수출상품은 '농산품'이다. 그것이 만들어낸 국격의 차이는 현격하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한국이 분명 이들보다 '잘 사는 나라', '선진국'이라 불리는데
왜 이들이 더 행복해 보이는 걸까. 왜 이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웃고,
더 편하게 삶을 즐기고, 더 걱정이 없는 걸까.

더 잘 산다는 우리는 정말 더 잘 산다는 것이 맞을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둥바둥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일까?

늙그막의 여유로움을 위해? 그 여유로움을 지금 태국사람들은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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