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에 먹었던 점심. 1500~2500원 사이다)
태국에 온 지도 넉 달이 되었고 끼니로 따져도 수백 끼는 족히 먹어치웠으니
이곳 음식에 대해서도 나름의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같다.
그간의 소감을 말하자면 태국 음식, 정말 맛있다. 한국 돌아가면 필시 그리워할 맛이다.
처음 태국에 온 날 회사밥(!)을 먹으면서
'아 이런 밥을 먹으면서 일할 수 있다니 난 행복한 사람이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이곳 음식은 내 입맛에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종합적으로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일부 음식이 거부감을 주었던 대만보다도 낫고,
이모저모로 맛대가리 하나 찾을 수 없었던 싱가폴 음식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한국 음식의 특징은 보통 매운 맛으로 함축되어질 수 있는데,
태국 음식은 내 나름의 경험에 근거하자면 매운 맛 + 단 맛 + 신 맛의 조합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많은 음식에서 이 세 가지 맛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일단 전반적으로 음식들이 매운 편이다. 한국음식도 매운 것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그렇다고 대부분의 음식이 맵거나 그렇지는 않다. (e.g., 김밥, 불고기, 삼계탕...)
하지만 태국음식은 물론 예외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음식이 매운 맛을 베이스로
하는 듯 하다.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보기가 쉽잖은데 웬만하면
청양고추 버금가는 강렬함을 발산하는 덕분에 잘못 먹었다간 눈물콧물에 땀범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현지인들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잘도 먹어대지만 말이다.
(속이 괜찮냐고 물어보니 다들 끄떡없단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설탕을 무지하게 넣어먹는다. 우리 나라의 경우 식당 테이블에
간장이나 소금, 후추 등이 놓여져 있어 입맛대로 더 첨가해 먹을 수 있는데
태국의 경우 테이블 위에 설탕이 놓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수프 같은 음식에도 큰 숟가락으로 설탕을 두 수저 정도
팡팡 끼얹고 먹기도 하는 거다. 기본적으로 제공될 때 이미 단 맛을 안고 있는데도 말이다.
설탕에 거부감이 있는 우리 나라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신 맛. 어떤 소스에서 나는 맛인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신 맛을 절묘하게 사용한 음식이 많다.
매운 맛과 단 맛에 중화되어서인지 시다고 해서 거부감이 들지도 않고,
먹는데 불편하지도 않다. 또한 밥하고도 희한하게 잘 맞아떨어진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톰양꿈(새우 스프) 역시 신 맛이 제대로 발휘된 음식되겠다.
이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가지 맛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면서
튀김, 조림, 구이, 삶음 등의 요리방법과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물고기 등의
재료와 결합되어 다양한 음식이 형성되는 것인데, 넉 달 동안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부지기수일만큼 그 종류는 다양한 편이다.
싱가폴에서 일하는 동안 거기 같이 있던 태국 사람이 계속 밥을 남기곤 하던데
그 이유를 태국와서 알았다. 자기네 나라 음식에 비하면 맛이 너무 없어서 그런거다.
그 아저씨 지금은 그릇 박박 긁어대며 엄청 먹어댄다. 나도 덩달아 잘도 먹어대고 있다.
태국와서 그나마 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너무도 괜찮은 음식 때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