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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실록] 019 - 태국에서 버스타기

문★성 2011.01.12 21:27 조회 수 : 124



방콕에 있는 에메랄드 사원이라는 곳을 가고 싶어
회사 사람들에게 버스로 가는 방법을 물어 보니.
자기들끼리 한참을 쑥덕거리더니 버스번호를 하나 알려주면서
반드시 차량의 색이 빨간 색인지를 확인하고 타라고 했다.
빨간색 버스가 에어컨이 달린 버스고 다른 버스들은 그보다 아랫급이니
에어컨 버스가 아무래도 편할 것이라는 거였다.

세상에, 이 더운 나라에 에어컨이 없는 버스도 있다니
혀를 끌끌 차면서 기어이 빨간색 에어컨 버스를 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곧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난관에 봉착하였으니 그건…

‘에어컨 버스라고 항상 에어컨을 틀어주지는 않는다’ 라는 새삼스런 진리였다.

높은 음자리표를 그리며 빙빙 돌아가는 노선이라
목적지까지 근 한 시간을 넘게 타고 갔는데 에어컨 틀어주는 대신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열고 달리더라. 이럴 거면 버스색이 빨간색이든 초록색이든
검푸른곰팡이색이든 무슨 차이가 있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버스에 탑승하니 타자마자 사진에서 보이는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버스 안내원 누나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내 앞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리는 거였다. 태국어라고는 사와디캅(안녕하세요), 캅쿤캅(고맙습니다),
폼락쿤(사랑해요) 밖에 모르는데 대뜸 처음 보는 안내원한테
사랑합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지라, 에라 모르겠다 싶어 목적지를 외쳤더니
뒤쪽의 빈 좌석을 가리키며 뭐라뭐라 하는 것이 냉큼 저기 가서 앉으라는 것 같았다.
돈은 내릴 때 내는 모양이다 싶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사람들 타고 내리는 걸 보고 있자니
왠걸, 아무도 돈을 내지도 않고,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 거였다.

대체 뭐지. 공짜 버스라도 된 단 말인가.
에어컨 버스가 에어컨 가동 안 한다고 공짜로 해주는 건가
별별 생각 다하면서 끝까지 앉아 있다가 결국 나도 돈 안 내고 내렸다. 내릴 때 살포시
안내원과 기사아저씨 눈치를 봤는데 신경도 안 쓰더라. 돈 안 내는게 맞는 모양이었다.
궁금해서 나중에 회사 가서 물어봤는데 이 사람들이 되레 화들짝 놀라는 건 또 뭔지..
왜 내가 태국의 버스 시스템을 태국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며 그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걸까나.
하여간 아쉽다. 태국어라도 알았으면 안내원에게 직접 물어보는 건데,
죽을 때까지 품고 갈 의문이 생겨버린 거다.

아무튼 뒤에 앉아서 승객들의 모습을 관망하고 있자니
할아버지, 할머니, 하다 못해 코찔찔이 어린애들이 타도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일어나며 자리 양보 잘 해주고, 그럴 때마다 다들 손을 합장한 채
고개를 조아리며 고맙다라고 하는 것이 보기 참 좋았다.
그러면서 길거리에 사당이라도 지나 칠 때면 전부는 아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대뜸 합장하면서 사당을 향해 인사하는 모습에
이 사람들 정말 순박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한다면
서민의 생활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거다. 그것이 버스든, 시장통이든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거리로 즐거웠던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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