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국왕전하의 사진.
빌딩의 벽면이나 큰 길가에서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식당이나 점포에서도
한쪽 벽면을 로얄 패밀리의 사진으로만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쉬이 볼 수 있다.
여기 오기 전 익히 들었듯 왕에 대한 존경심이 꽤나 깊기 때문이렷다.
관공서나 관광지는 차치하더라도 자기 집이나 가게에 국왕이나 왕비의 사진을
걸어놓는 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안 지킨다고 두드려 맞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순수히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면 태국은 권위에 대한 인정이 꽤나 뚜렷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한 예로 태국에서는 높은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앞에 '쿤'자를 붙인다.
내 이름이 성이니까 나보다 낮은 사람들은 '쿤 성', 이렇게 나를 부른다는 것인데
이로써 '내가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를 드러낸다고 한다.
외국 사람들, 특히 서양 사람들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요즘 여기 프로젝트 팀원 중에 호주에서 온 엔지니어 하나가
제법 큰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유는 이 아저씨가 개념없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동안에 말허리를 자르고
지 마음에 안 든다고 개콘에 나올법한 아주 과장된 비꼬는 표정을 지으며
이곳 매니저들에게도 명령조로 일을 시키는 등
태국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을 남발함으로써
처음에는 깍듯하게 자신을 대했던 태국 사람들을
분노로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람을 추방하려는 얘기가 윗선에서 오가고 있을 정도니
태국 사람들이 권위에 대한 인정에 얼마나 민감한지 직접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예의를 잘 지키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예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
나 역시 존중받고자 하는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껏 태국 사람들은 너무도 친절하고 공손히 날 대해주어 왔다.
그말인즉슨, 나 역시 최선의 겸손과 공손함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수십 번씩 볼 수 있는 국왕의 사진과
자기의 커리어가 간당간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피식피식 비웃음과 삿대질을 남발하는 호주 아저씨의 모습은
태국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