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내가 머문 아파트)
싱가폴 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글로벌 설문조사 결과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 1위로
싱가폴이 선정되었다는 뉴스기사를 문성닷컴에 소개하면서 살짝 비웃은 바 있다.
뭐 특별할 게 있다고, 인공의 낙원이니 뭐니 하는 오도된 수식어를 자랑하며
잘 나가는 나라인척 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안 들었던게다.
그런데 어느새 두 달 가까이 이곳에서 지내보니
이거 정말 '살아볼만한 나라',
조금 더 나아가 '살고 싶은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다른 출장지에 비해 확실히 살기가 편하다.
공용어가 영어인지라 혼자 돌아다녀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데다가
워낙에 외국인이 많다보니 다른 집단에 동화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가격적인 면이나 편의성에 있어 한국보다 쇼핑은 편한 편이었고,
좀 덥긴 하지만 전반적인 날씨는 따뜻해서 지내기 좋았다.
음식은 안 맞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내게 있어 큰 문제는 아니었고
길거리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 말고는 한국보다 조금 더 점잖고
규범적인 생활양식이 자리잡힌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이런 이유로 누가 여기와서 살아라, 그러면 고개 끄덕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다.
허나 '지금껏 지내온 아파트에서 계속 돈 한 푼 안 내고 살아도 된다'라는
아주 중요하고 비현실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이 전제 없이 여기서도 똑같이 힘들게 돈 모아서 은행 빚 갚으면서
구석 후미진 곳에 출퇴근 두 시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면
옮겨올 메리트가 전혀 없는 게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만약 그 정도 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싱가폴에서보다 한국에서 받는게 여러 모로 나을 것 같다.
예컨대 한국에서 이런 아파트 공짜로 살 수 있다면
말도 훨씬 잘 통하고 지금껏 뿌리 박고 살아온 한국을 버릴 이유가 전혀 없지.
뭣하러 내가 싱가폴에 온단 말인가.
아하. 그렇담,
역시 문제는 돈이구나. 싱가폴이냐 아니냐가 아니고.
하마터면 착각할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