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강 경기들이 한참 진행 중이니
월드컵은 7월이 넘어서도 계속되겠지만
우루과이에게 2대 1로 패함으로써 한국의,
그리고 나의 남아공 월드컵은 이걸로서 끝이 났다.
마지막 경기는 다들 보셨겠고
저마다 묵직한 아쉬움을 한 가득씩 가슴에 안으셨겠지만,
나 역시 갖은 생각들이 어지러이 머리에 출렁거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크게 타올랐던 아쉬움의 불길이 조금씩 잠잠해지니
4년에 한 번이라도 이런 월드컵을 만끽할 수 있음이,
경기 시작 몇 시간전부터 손에 일이 잡히지 않게 만들고
마치 수능시험 치는 것과 같은 두근거림과 함께
지켜볼 수 있는 스포츠 경기가 있다는 것이 문득 감사하게 느껴졌다.
같은 축구만 해도 K리그도 있고
당장 내년 초에 아시안컵(두고보자 일본)도 있지만,
다른 종목을 따지자면 올림픽도 있고, 야구 WBC도 있고
김연아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월드컵만큼의 긴장감을 주고
집중하게끔 만들며 선수들과 공명하게 만드는 경기는 단언코 없다.
그런 월드컵을 90년부터 매번 경험하고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예컨대 대만은, 월드컵 전경기를 중계해주고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긴 하나
본선은 커녕 아시아 최종예선에도 가보지 못했지 않은가.
우린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지.
그리고 또 하나, 어쨌거나 월드컵은 다시 돌아온다는 거다.
한국이 아시아 예선 떨어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으니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이번처럼 최소 세 경기는 펼칠 수 있을 것이다.
8강까지 간다면 다섯 경기도 가능하겠지?
이런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비록 그 땐 나도 서른 중반을 넘어서 결혼도 했을테고
팍삭 늙어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한 게임 한 게임을
두근거리며 즐길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경기를 직접 뛰는 선수들은 또 다를 것이다.
이십 대 후반, 삼십 대의 선수들에게 다음
월드컵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보는 월드컵과 뛰는 월드컵은 분명 다른 것일테니까.
하지만 그들 역시 그라운드가 아닌 또 다른
자기만의 월드컵을 찾아서 다른 종류의 흥분과 감동을 느끼며
선수 생활 잘 마무리하거나, 제2의 삶을 잘 영위했으면 한다.
특히 이동국, 이름만 말해도 가슴이 뭉클해져오는 이 사람아.
그 누구보다 자네는 어제 경기 후회하지 않았으면 하고
훌훌 잘 털어버렸으면 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