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예민하고 민감하고 소심하고 세심한 나는
스트레스에 그리 강하지 못한 편이다.
걱정/근심/불안거리가 생기면
일단 피부가 안 좋아지고
위장에서 불꽃이 일며
표정이 시멘트처럼 굳는다. 잠을 자도 편히 못 잔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안 좋은 기운을 내 맘대로
필터도 없이 전달하는 편이다. (거 참 성격 안 좋군-_-)
그렇다고 허구헌날 스트레스에 눌러 바둥대지는 않는데,
올 늦여름부터 지금까지는 그 스트레스가
꽤나 굳건한 강도로, 마치 마라톤처럼 이어지고 있는 참이다.
요 몇 달 사이 진로의 갈림길에 몇 번 처해야 했으며,
안 해 본 일을, 아직 안 잡히는 일을
도망치는 도둑 쫓아가듯 따라가야 하는 입장인지라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자랄 만한 비옥한 토양이
본의 아니게 조성되어 지금은 아예 꽃 피고
열매가 풍성히 열릴 정도가 된 것이다.
그 하중에 꽤나 심신이 고달팠기에
최근 한 십 여일 동안 스트레스가 왜 생기는지,
대체 어떻게 해야 뿌리를 뽑아
잘근잘근 씹어먹을 수 있는지 아예 연구를 좀 해보았다.
관련된 신앙서적이나 자기계발서들도 다시 들춰보았으며,
내 속도 많이 돌아보고, 주위 사람들의 조언도 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연구분석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내가 너무 멀리까지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오늘 일의 걱정 뿐만 아니라
내일 일, 다음 주 일, 다음 달 일,
심지어는 웃기겠지만 지금 몸 담고 있는 프로젝트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드는 내년이나 내후년의 일까지
미리 생각하고 염려하고 고민하고 걱정해오고 있던 것이다.
그 문제들에 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사람이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손 댈 수 없는,
혹은 준비하고 계획하더라도 크게 바꿀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만 올려다 보고, 지금 주위의 즐거운 일들에 관심을 돌리며,
불안한 생각 따윈 깡그리 걷어차 버리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처럼 기독교인이면
아래와 같은 말씀에 의지해야 할 것이고.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교만한 탓이기도 하다.
내가 다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내가 다 준비해서 만반의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작은 일 하나하나 신경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삶에서
그런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일이 잘 풀리는 경우는 대개 내 계획 때문이라기 보다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일들이었고,
내 계획과 준비가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자, 인정하자. 내 힘과 능력은 너무도 미약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하고, 준비하고
탁탁! 손을 털어 버리자.
데일 카네기의 책
How to Stop Worrying and Start Living (책 제목 정말 멋지다)
에 이런 말이 나온다.
"걱정에 대처하지 못하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
잊지 말자. 나 오래오래 살거거든.
나름 예민하고 민감하고 소심하고 세심한 나는
스트레스에 그리 강하지 못한 편이다.
걱정/근심/불안거리가 생기면
일단 피부가 안 좋아지고
위장에서 불꽃이 일며
표정이 시멘트처럼 굳는다. 잠을 자도 편히 못 잔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안 좋은 기운을 내 맘대로
필터도 없이 전달하는 편이다. (거 참 성격 안 좋군-_-)
그렇다고 허구헌날 스트레스에 눌러 바둥대지는 않는데,
올 늦여름부터 지금까지는 그 스트레스가
꽤나 굳건한 강도로, 마치 마라톤처럼 이어지고 있는 참이다.
요 몇 달 사이 진로의 갈림길에 몇 번 처해야 했으며,
안 해 본 일을, 아직 안 잡히는 일을
도망치는 도둑 쫓아가듯 따라가야 하는 입장인지라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자랄 만한 비옥한 토양이
본의 아니게 조성되어 지금은 아예 꽃 피고
열매가 풍성히 열릴 정도가 된 것이다.
그 하중에 꽤나 심신이 고달팠기에
최근 한 십 여일 동안 스트레스가 왜 생기는지,
대체 어떻게 해야 뿌리를 뽑아
잘근잘근 씹어먹을 수 있는지 아예 연구를 좀 해보았다.
관련된 신앙서적이나 자기계발서들도 다시 들춰보았으며,
내 속도 많이 돌아보고, 주위 사람들의 조언도 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연구분석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내가 너무 멀리까지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오늘 일의 걱정 뿐만 아니라
내일 일, 다음 주 일, 다음 달 일,
심지어는 웃기겠지만 지금 몸 담고 있는 프로젝트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드는 내년이나 내후년의 일까지
미리 생각하고 염려하고 고민하고 걱정해오고 있던 것이다.
그 문제들에 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사람이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손 댈 수 없는,
혹은 준비하고 계획하더라도 크게 바꿀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만 올려다 보고, 지금 주위의 즐거운 일들에 관심을 돌리며,
불안한 생각 따윈 깡그리 걷어차 버리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처럼 기독교인이면
아래와 같은 말씀에 의지해야 할 것이고.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교만한 탓이기도 하다.
내가 다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내가 다 준비해서 만반의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작은 일 하나하나 신경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삶에서
그런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일이 잘 풀리는 경우는 대개 내 계획 때문이라기 보다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일들이었고,
내 계획과 준비가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자, 인정하자. 내 힘과 능력은 너무도 미약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하고, 준비하고
탁탁! 손을 털어 버리자.
데일 카네기의 책
How to Stop Worrying and Start Living (책 제목 정말 멋지다)
에 이런 말이 나온다.
"걱정에 대처하지 못하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
잊지 말자. 나 오래오래 살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