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거짓말 #2

문★성 2007.09.03 20:20 조회 수 : 243


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한데요,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드릴게요.

시간은 한 열 시는 넘었던 것 같고,

어차피 저택은 2~3일 더 빌 예정이었으니

다들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남편이 같이 저녁 먹을 때 식당에서 큰 소리쳤듯

그날 안 되면 그 다음날 또 오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비밀통로도 알겠다, 집이 언제까지 비는지도 알겠다,

도둑질도 이렇게 맘 편한 도둑질은 없겠거니 생각했을 정도였죠.


집에 들어온 과정은 아시는 바와 같고요,

들어온 후에 저녁 먹을 때 얘기한 대로 팀을 나누어

명호씨와 보라가 2층을, 남편과 제가 1층을 뒤져보기로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먼저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 후에

남편은 방 쪽을, 저는 거실 쪽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사실 남편은 손이 크고 행동거지가 굵은 사람이라 방 같은 것을 세세히

잘 뒤지는 타입은 아닌데요, 그 날은 웬일인지 굳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더라고요.

어쩌겠어요. 보셨겠지만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서요

그 사람이 뭘 하겠다고 우기면 저는 끽 소리도 못해요.

요즘은 좀 잠잠해졌지만 예전에는 주먹 날라오기가 일쑤였다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제가 거실을 죽 살펴봤습니다.

노인네 혼자 사는 집임에도 크고 작은 장식품들은 어찌나 많은지

그거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하룻밤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어요.

소파나 탁자 같은 것이 척 보기에도 상당히 고가로 보였지만

저희 사정상 그런 것들을 들고 나갈 수는 없어서,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삼십 분 정도 동안 거실 하나를 체크한 후 복도를 따라

다음 거실 쪽으로 이동을 했어요. 그 집엔 아마 거실이 세 개인가 있을 거예요.

마지막 것은 사실상 식당이라 봐도 무방하지만요.

첫 번째 거실과 두 번째를 잇는 복도는 꽤 길었는데,

한 삼십 미터? 예, 한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어요.

왜 저희 첫째 애 초등학교 운동회가 얼마 전에 있었잖아요.

우리 애가 거기서 달리기를 했는데

아 글쎄 그 콩알만한 녀석이 일등을 했지 뭐예요.

우리 아들이지만 어찌나 대견스럽고 이뻐보이는지.


아이고 내가 뭔 소리를 하는건지, 죄송합니다.

여하튼 그 때 봤던 오십 미터 달리기 거리보다는 좀 짧아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복도를 한 절반쯤 걸어왔을 거예요.

왼쪽에 나무로 된 쪽문을 하나 발견했어요.  

형사님도 보셨다시피 애초에 원목 분위기의 인테리어인지라

크게 위화감 같은게 생길만한 모습은 아니었는데요,

그래도 뜬금없이 복도 한복판에 있으니까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그걸 보자마자 문을 조금 열어봤어요. 저도 모르게요.

왜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요.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지고,

호기심 같은게 생기잖아요. 뭐, 보물창고일 수도 있는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문을 채 다 열기도 전에 그 안에서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온거예요.

남자, 예. 분명 남자 비명소리였어요. 명호씨라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사실 자세히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죠. 너무 무서웠거든요.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는데 세상에, 입도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만큼 무섭고 당황스러웠어요.

누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쫓아올 것만 같았거든요.

도망쳐야겠다. 그래야 산다. 이런 생각이 들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돌려

무작정 남편이 있는 방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아 글쎄 몸이 얼어붙어서인지

몇 걸음 채 딛지도 못하고 제 발에 걸려 넘어져버린거있죠, 아주 우스꽝스러운 몰골로요.

그런데 말예요. 형사님! 그 때 남편을 정면에서 따악! 마주친거예요.

이 양반은 분명 방에서 헤매고 있어야 되는데 제 조금 뒤에 따라오고 있었던 거죠.

수상하죠? 그치만 그 때는 이런 생각하지도 못하고 남편을 붙잡고 외쳤죠

- 여보여보! 저.. 저 들었어요? 비명소리요!!

- 어? 어! 그래.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는 했는데, 그게 비명소리였어?

- 네에! .. 명호씨 같아요!

- 뭐야?! 명호라고?

- 들어가봐요! 살았다면 얼른 구해야죠!

- 미, 미쳤어 당신?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들어가라고?

- 그럼 어떡해요? 경찰이라도 불러요?

- ...

- 여보! 진짜 명호씨라면, 버리고 가면 안되잖아요. 나중에 발견이라도 되어봐요!


남편은 조금 인상을 쓰더니만

야구방망이를 고쳐 쥐고는 문을 열고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문을 열 때부터 다리가 후들거리는게 뒤에서도 다 느껴지더라고요.

그 때는 머리가 멍해서 아무 생각 못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 참 못난 사람이에요.

참 악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지만요.


2부: 아내의 진술 (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92 [화요단상] 차갑거나 혹은 뜨겁거나 [1] 문★성 2007.10.02
91 [화요단상] 그늑진 아소에 말을 걸어 문★성 2007.09.19
90 [소설] 핫싼씨에게 빠져듭니다 문★성 2007.09.16
89 [대선이야기] 2007년 09월 16일 유시민, 문국현 [3] 문★성 2007.09.16
88 [화요단상] 가치관과 사랑사이 문★성 2007.09.11
87 [화요단상] "나 요즘 힘들어" 문★성 2007.09.04
» [소설] 거짓말 #2 [2] 문★성 2007.09.03
85 [화요단상] 문국현 사장님과 [1] file 문★성 2007.08.30
84 사장님 대통령 출마!!! [4] 문★성 2007.08.23
83 [화요단상] 집안일 문★성 2007.08.21
82 [화요단상] 개봉금지 문★성 2007.08.15
81 [소설] 거짓말 #1 [2] 문★성 2007.08.12
80 [화요단상] 몰랐다 문★성 2007.08.12
79 [수필] 터놓고 얘기합시다 - '구매'편 문★성 2007.08.05
78 [화요단상] 탈레반 인질사태에 대해 [5] 문★성 2007.07.31
77 [소설] 빛을 잃었습니다 - 마지막 문★성 2007.07.28
76 [화요단상]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문★성 2007.07.24
75 [화요단상] 미국에서 (회사)카드로 밥 먹는 법 문★성 2007.07.17
74 [수필] 내게 자유를 달라 [2] 문★성 2007.07.16
73 [화요단상] 고통은 롱타임 [2] 문★성 2007.07.10
72 [화요단상] 프로가 된다는 것 [4] 문★성 2007.07.03
71 [만화] Impossible is nothing [5] 문★성 2007.07.01
70 [화요단상] 유한킴벌리 신입사원 [6] 문★성 2007.06.26
69 [실화] M군 스토리 [4] 문★성 2007.06.25
68 [화요단상] War in Home [4] 문★성 2007.06.19
67 [화요단상] 빤스 [7] 문★성 2007.06.12
66 [소설] 빛을 잃었습니다 - 네번째 [4] 문★성 2007.06.06
65 [화요단상] 서울의 출퇴근길 [6] 문★성 2007.06.05
64 [화요단상] 관심 문★성 2007.05.29
63 [음악] 5월 12일 - 지금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2] 문★성 2007.05.12
62 [기행] 나를 찾는 여행 - 문성찾기 [10] 문★성 2007.05.09
61 [수필] 飛行中短想 - 눈을 생각합니다 문★성 2007.04.22
60 [수필] 샤브샤브 스토리 [4] 문★성 2007.03.30
59 [수필] 터놓고 얘기합시다 - '선택'편 [4] 문★성 2007.03.18
58 [소설] 빛을 잃었습니다 - 두번째 [2] 문★성 2007.02.22
57 [음악] 문성의 2집앨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문★성 2007.01.13
56 [소설] 빛을 잃었습니다 - 첫번째 [4] 문★성 2006.12.09
55 [수필] 터놓고 얘기합시다 - '자기계발서' 편 [5] 문★성 2006.11.22
54 [詩] 가을 맞이 시 한 편 [2] 문★성 2006.11.03
53 [일기] 1995.1.4 - 절망가(絶望歌) [6] 문★성 2006.10.15
52 [수필] 내가, 나에게, 나를, 소개한다 문★성 2006.09.18
51 詩 - 다. 다. 다 [6] 문★성 2006.08.31
50 문성자작단편연애소설 - 카베(壁) 2편 문★성 2006.07.28
49 '세상에서 가장'을 노래한다 [6] 문★성 2006.06.29
48 문성쓰딕셔너리볼륨원 [87] 문★성 2006.05.28
47 폭력의 미학 5부 - 오로라공주 문★성 2006.04.18
46 시일야동해대곡 문★성 2006.03.18
45 2006 文成歌謠大償塔百 [7] 문★성 2006.03.04
44 문성자작단편연애소설 - 카베(壁) [2] 문★성 2006.01.18
43 터놓고 얘기합시다 - '삶' 편 [6] 문★성 2005.11.05